행위

복식사전:몽수

DKHC Edu

Tutor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34 판 (판 1개를 가져왔습니다)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몽수
蒙首
ckid costume0800
한글 몽수
한자 蒙首
영문(음역) Mongsu
영문(의미) Woman’s veil
분류 관모 및 쓰개
성별
시대 고려
연령 성인
신분 귀족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몽수】



정의

  • 고려의 부인들이 나들이 할 때 머리에 썼던 검은 라(羅)로 만든 쓰개
  • Woman’s veil made of black silk gauze worn during the Goryeo period

해설

『고려도경(高麗圖經)』 권20 부인(婦人) 조(條)에 몽수는 검은 색의 라로 만드는데, 세 폭에 여덟자 길이로 이마에서부터 머리를 내려덮고 그 값이 금 1근과 맞먹었다고 하였으며, “공경(公卿)부인의 처가 출입할 때는 조라(早羅)로 몽수를 하고 수삼인(數三人)의 노비를 데리고 말을 탔다”고 하여 유행과 사치를 위한 여성의 쓰개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몽수는 조선시대의 너울로 이어졌으며, 내외용 쓰개로 용도가 바뀌게 된다. 폐면(蔽面), 즉 얼굴을 가리는 풍습은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존재했었는데, 한대(漢代)에 편찬된『예기(禮記)』내측(內側)에는 여자가 외출할 때는 꼭 얼굴을 덮어 싸도록[蔽面] 하였고 이를 위해 ‘면의(面衣)’로써 비단 쓰개(帛巾)가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이 비단 쓰개[帛巾]는 대체로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비교적 얇은 흑색의 비단을 사용하여 머리 전체에 써서 다른 사람에게 얼굴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당나라에서는 멱리(冪䍦)와 유모(帷帽) 등의 쓰개가 유행하였으며, 이러한 풍습은 오랫동안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송(宋) 고승(高承)의 『사물기원(事物紀元)』에, “요즘 …면의(面衣)가 있다. 얼굴 앞뒤는 모두 자색 비단(紫羅)을 사용하여 아래로 늘어뜨렸다. 여자가 말에 타고 멀리 나갈 때에 이것을 사용하여, 면모(面帽)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풍습이 전해져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여인의 쓰개인 몽수(蒙首)로 이어졌을 것이다.

관련항목

시맨틱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