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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전: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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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초
毛綃
ckid costume1234
한글 모초
한자 毛綃
영문(음역) Mo-cho
영문(의미) Fine silk damask on tabby
분류 직물
성별 남녀공용
시대 조선, 일제강점기
연령 성인
신분 관리, 사대부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모초】



정의

  • 바탕은 평직, 무늬는 수자직으로 그 조직이 영초와 동일하나 좀더 품질이 좋은 견직물
  • Fine silk damask on tabby

해설

모초(毛綃)는 『조선휘보(朝鮮彙報)』에서 ‘영초와 조직은 동일하나 품질이 더 좋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는 ‘경사는 가늘고 위사는 굵은 견직물의 일종’이라고 하였다. 조선말기 유물에서 모초를 영초와 비교해 보면 모초는 육안으로 보았을 때 바탕부분에 위사방향의 미세한 골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촉감이 영초보다 훨씬 톡톡하고 균일하다. 1884년『한양가』에 모초단(毛綃緞)이 기록되어 있으며 1915년『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모초(毛綃), 유문모초(有紋毛綃)가, 『발기』에는 모초․별문모초․별문모초단(別紋毛綃緞)․운복모초단․접문모초․화문모초 등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모초는 쾌자․주의․도포 등의 포와 치마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배자․겹 군복․웃무족 치마에도 사용되어 영초보다 다양한 품목에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三國遺事』 『經國大典』『中宗實錄』 세주 평직 면주 양색단 수자직 costume1235 모피 毛皮 Mo-pi Fur 남녀공용 부족연맹국가, 고려, 조선 성인 관리, 사대부 직물 포유동물의 피부를 벗겨 털이 붙어 있는 채로 무두질하여 만든 의복이나 복식의 재료 Clothing material made of animal pelts 우리나라에서 모피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일찍이 부족국가 시절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고려사』 의종대의 기록에는 금나라로부터 양 2000마리를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모피의 사용은 여전하였는데 상의원에 소속된 장인 중에 모의장(毛衣匠), 모관장(毛冠匠)이 있음으로 미루어 모피를 의복이나 관모에 즐겨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모의장은 구의나 갓저고리 털배자와 같이 모피옷을, 모관장은 이엄이나 풍차와 같은 방한모를 생산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갖옷이나 털로 만든 방한구를 팔던 모의전(毛衣纏)도 있었다. 유희춘의 『미암일기』에도 모피류로 만든 방한용 옷이 자주 등장하였는데, 흑담(黑毯)으로 만든 단령, 서피나 초피를 넣어 만든 사모이엄을 썼으며 사슴가죽이나 노루가죽 등도 복식용으로 사용하였다. 물론 방한 목적 이외에도 초피 갖저고리는 사치함의 상징이었으니 『중종실록』에는 “근래에 지나친 사치가 풍습이 되어 의구(衣裘)와 금석(衾席) 따위도 다 수달피털(貂皮)로 만들며 향려의 작은 모임에도 수달피 옷이 없는 부녀는 부끄러워 참석하지 않는데....”라고 하여 모피류가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규합총서』와『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모피류 관리 방법도 기록되어 조선후기에도 털옷이 중요하게 사용 된 옷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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