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복식사전:속치마

DKHC Edu

katd>Unknown user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48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속치마
CK1311.jpg
ckid costume0674
한글 속치마
영문(음역) Sokchi-ma
영문(의미) Underskirt or petticoat
분류 속옷
성별
시대 조선
연령 성인
신분 모든계층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속치마】



정의

  • 겉치마 밑에 받쳐서 입는 치마
  • Underskirt or petticoat

해설

치마는 삼국시대 문헌에 상(裳) 또는 군(裙)으로 표기되어 있고, 세종 2년(1420)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천전의(遷奠儀)에는 ‘쳐마(赤亇)’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이 지은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츄마 상(裳)은 남복(男服)이며, 츄마 군(裙)은 여복(女服)“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정조 19년(1795)에 쓰인『한중만록(閑中漫錄)』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삼간택(三揀擇)때 정경왕후가 내린 물목에 “치마“라고 표기되어 있다. 치마를 입을 때는 옷맵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 밑에 반드시 속옷을 받쳐 입었는데, 한복용으로 오늘날과 같은 속치마를 착용한 것은 개화기 무렵으로 192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속옷을 입었다. 하의에는 팬티 역할을 하는 다리속곳을 입고 속속곳·바지·단속곳 등 두 가랑이로 된 속옷을 치마 밑에 입어 속치마를 대신하였다. 이 밖에도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정장 시에 장식적인 목적으로 대슘치마, 무지기치마를 착용하였다. 1920년대 이후 서양식 셔츠가 들어오면서 바지와 단속곳 대신 ‘사루마다(猿股,さるまた)’라는 블루머 형태의 무명 속바지를 입었고, 그 위에 인조견으로 만든 속치마를 덧입었는데 어깨허리(조끼허리)를 단 통치마형이었다. 처음에는 개량형 짧은 치마 속에 입었으나 후에는 전통적인 치마에도 착용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박성실.조효숙.이은주, 2005,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한국복식명품)』, 서울: 단국대학교 출판부 【REF0118】
  • 안명숙, 2007, 『우리옷이야기』, 서울: 예학사 【REF0630】

도판자료

관련항목

시맨틱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