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복식사전:흉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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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
胸背
ckid costume0097
한글 흉배
한자 胸背
영문(음역) Hyungbae
영문(의미) Insignia
분류 관복
성별
시대 조선
연령 성인
신분 관리(문관)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흉배】



정의

  • 백관 상복(常服)의 품계를 가리기 위해 가슴과 등에 붙임
  • Insignia attached the chest and back of the official’s everyday uniform to indicate wearer’s rank

해설

형태는 사각형이며 계급에 따른 동물이 수놓아져있다. 초기에는 상복의 대로 상하 구별을 하였으나 잘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여 단종 2년(1454)에 당상관의 흉배제도가 제정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1품은 문관공작, 무관 호표(虎豹), 2품은 운안(雲雁)과 호표, 3품은 백한(白鷳)과 웅비(雄飛), 대군은 기린, 대사헌은 해치(獬豸), 도통사는 사자, 왕자와 군은 백택(白澤)이다. 연산군 11년(1505)에 1품에서 9품까지 모두 달되 돼지, 사슴, 거위, 기러기 등 우리나라 무늬를 살리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때뿐이었다. 임진, 병자란 이후 흉배가 정한대로 사용되지 않자 숙종은 문관은 나는 새, 무관은 달리는 짐승을 자수하라고 명했다. 영조 21년(1745)에 문관 당상관은 운학(雲鶴),당하관은 백한, 왕자와 대군은 기린, 무관 당상관은 호표, 당하관은 웅비로 제정하여 다음해에『속대전(續大典)』에 기록하면서 국초의 무늬와는 다르나 옛것대로 회복하기 어려우므로 시속대로 기록한다고 밝혔고, 이는『대전회통(大典會通)』에 그대로 이어졌다. 고종 34년(1897) 이왕직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예복에 대해 기록한 것을 보면 문관 당상관은 쌍학(雙鶴), 당하관은 단학(單鶴), 무관 당상관은 단호(單虎)이며 이를 보여주는 실물도 상당수 남아있다. 초기 흉배의 크기는 상복의 가슴을 모두 덮을 정도로 컸으며 말기에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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