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초무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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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무복식 | |
| 初舞服飾 | |
| ckid | costume0321 |
|---|---|
| 한글 | 초무복식 |
| 한자 | 初舞服飾 |
| 영문(음역) | Cho-mu |
| 영문(의미) |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
| 분류 | 정재복 |
| 성별 | 남 |
| 시대 | 조선 |
| 연령 | 청소년 |
| 신분 | 무동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초무복식】 | |
정의
- ‘이제부터 춤을 아룁니다.’하고 고하는 서무(序舞)로서 정재의 기본이 되는 춤
- Dance that announces the opening of royal banquet
해설
향악정재로서 창제된 것으로 그 출처는 숙종 기해년(己亥年, 1719) 진연의궤에 의하면 칠작 중 제3작부터 춤이 상연되고, 제3작을 올릴 때 보허자령(步虛子令)의 연주에 따라 무동이 초무를 추는데 창사는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원무(元舞) 2인에 협무(挾舞) 18인이 추었는데 고종 때에는 4인이 추기도 하였다. 고종 임인년(壬寅年, 광무 6, 1902)『진연의궤(進宴儀軌)』악장조에 주나라 때 예악(禮樂)을 가르치던 스승 유렴(劉濂)이 소무(小舞)를 만들어, 춤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두 줄로 세워 놓고 족도(足蹈)하며 드나드는 걸음걸이를 매우 엄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숙종 때에 춤을 처음 배우는 무동들을 지도하기 위해 정재의 기본 춤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이름을 초무라 불렀다. 이 춤은 손과 발의 기능을 연마시키는 춤으로서 독립된 춤이라기보다는 이름 그대로 ‘이제부터 춤을 아룁니다.’하고 고하는 서무의 역할을 하였다. 순조 기축년(己丑年, 1829) 진찬의궤의 무동은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에 화화방보(畵花方補)한 남색단령(藍色團領)착용하며 두석녹정대(豆錫綠鞓帶)를 띠고 화화흑화(畵花黑靴)를 신는다.
참고문헌
- 이미영, 1995, 『조선시대 궁중무용 복식사』, 서울: 다운샘 【REF0177】
- 정은혜 저, 1993, 『정재연구 Ⅰ』, 서울: 대광문화사 【REF0603】
- 이흥구ㆍ손경순 역, 2000, 『조선궁중무용』, 서울: 열화당 【REF0606】
- 김경실, 2003, 『조선시대 궁중진연복식』, 서울: 경춘사, 【REF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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