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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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의 | |
| 雨衣 | |
| ckid | costume0503 |
|---|---|
| 한글 | 우의 |
| 한자 | 雨衣 |
| 영문(음역) | U-ui |
| 영문(의미) | Rainwear |
| 분류 | 일상복 |
| 성별 | 남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모든계층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우의】 | |
정의
- 비올 때 비를 막기 위해 입는 옷
- Clothes worn for protection against rain
해설
비를 막기 위한 우장은 우모(雨帽)와 우의로 이루어졌다. 우의의 재료는 유지(油紙)와 띠풀[白茅]이다. 김좌균(金左均, 1810-?)의 『송간이록(松澗貳錄)』와 『물명고(物名考)』에는 우의를 유삼(油衫)이라 하여 유지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성호사설(星湖僿說)』 권7 인사문(人事門) 분사(墳莎)에 “우의는 띠(白茅)의 잎으로 만든다.”고 하니 띠풀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점필재집(佔畢齋集)』시집(詩集) 권20에 실린 “공연히 후미진 바위에서 비옷 짜던 게 생각나네(空憶隈巖織雨衣)”라는 싯귀를 통해 띠풀 등으로 우의를 만드는 방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권37 세종 9년(1427) 9월 18일(계묘) 기사에는 세종과 맹사성(孟思誠, 1360-1438), 허조(許稠, 1369-1439) 가 논의하는 내용 중, 명나라에 가는 조선의 사신들이 가서 사용할 사모와 품대, 우의 등 물건을 사야할 것 같다고 아뢰자 김종서(金宗瑞, 1390-1453)가 품대, 우의는 가져가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아뢰는 등의 대화 내용이 실려있다. 또 『세조실록(世祖實錄)』 권31 세조 9년(1467) 윤7월 11일(무진) 기사에 세조가 가뭄 중에 비가 오자 기뻐하며 우의를 입고 후원을 산보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우의는 왕 이하 관리들,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비가 올 때 사용하는, 없어서는 안 될 복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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