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복식사전: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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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
梁冠
ckid costume0838
한글 양관
한자 梁冠
영문(음역) Yang-gwan
영문(의미) Official’s coronet
분류 관모 및 쓰개
성별
시대 조선
연령 성인
신분 관리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양관】



정의

  • 조선시대에 관리가 제복(祭服)이나 조복(朝服) 차림을 할 때 착용하는 관모
  • Official’s coronet worn with the ceremonial robe during the Joseon period

해설

양관의 구성은 이마에서부터 둥글게 머리 위를 덮으며 관의 뒷면에 닿는 너비 10㎝ 정도의 양(梁)과 머리둘레를 싸는 관의 아랫면인 무(武), 관의 뒷면을 정식하는 투조장식 판인 배면(背面), 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목제의 비녀[목잠:木簪]로 이루어진다. 착용자의 품계에 따라 양에 부착된 금선 장식의 수(數)를 달리하였다. 조복에 착용하는 양관은 만초 무늬를 투조(透彫) 장식한 무(武) 전체를 금칠로 도금하였으며, 관을 가로질러 지르는 비녀인 목잠에도 금칠을 하였으므로 이를 금관이라고도 하였다. 반면에 제복에 착용하는 양관은 무의 중심부분과 목잠을 꽂는 구멍 둘레에만 도금하고 그 외의 대부분은 흑색이었으므로 조복을 입을 때의 양관과 구분하여 제관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여복지(輿服志)에 의하면, 양관은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13년(1370)에 명 태조(太祖)로부터 배신(陪臣)의 제복(祭服)을 사여 받으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이나『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대전회통(大典會通)』에 기록된 문무관 조․제복용 양관은 모두 동일하게 1품은 5량 목잠(木簪), 2품은 4량 목잠, 3품은 3량 목잠, 4․5․6품은 2량 목잠, 7․8․9품은 1량 목잠으로 양에 차이를 두어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말까지 그 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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