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몽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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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두리 | |
| 蒙頭里 | |
| ckid | costume0190 |
|---|---|
| 한글 | 몽두리 |
| 한자 | 蒙頭里 |
| 영문(음역) | Mongduri |
| 영문(의미) | Woman’s robe or dancer’s robe |
| 분류 | 여성예복 |
| 성별 | 여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궁인, 서민, 여령, 무당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몽두리】 | |
정의
- 조선시대 궁중의 낮은 신분인 여관(女官)이나 하층 부녀의 예복, 궁중 정재(呈才)에 참여하는 여령(女伶)의 옷, 무당의 무복(巫服)
- Robe worn by court maids or women of the lower class; shaman’s robe or female dancer’s robe worn for court banquets
해설
몽두의(蒙頭衣)라고도 한다. 몽두의의 기록은 태종 12년(1412) 6월 “궁녀와 상기(上妓) 이외의 서인(庶人)의 부녀와 종비(從婢)․천례(賤隷)의 옷은 다만 주(紬)와 저포(苧布)의 몽두의를 입게 하자.”라는 사헌부의 상소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당시 몽두의는 천한 여성의 옷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의경(申義慶)의『상례비요(喪禮備要)』(1621)에는 여자 수의용 상복(喪服) 중 하나로 몽두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당시의 수의(壽衣)는 실제 착용되었던 옷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므로, 수의용 몽두의는 평소 착용되었던 여성용 포(布)로 보여 진다. 한편『궁중발기(宮中撥記)』중「순화궁가례시절차(順和宮家禮時節次)」(1847)를 보면, 가례(家禮)에 참여하는 기행나인(奇行內人) 4인의 복식으로 ‘홍몽도리’ 1쌍과 ‘황몽도리’ 1쌍이 기록되어 있다. 영조 이후의『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같은 위치에 홍장삼과 황장삼으로 나타나므로, 당시 기행나인의 ‘몽도리’를 장삼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형태로 보는 설도 있다. 하층 여관(女官)의 옷으로서 몽두리의 사용은 세종 28년(1446)에 제정한 상복제도(喪服制度)에도 나타난다. 6품 이하 여관의 상복(喪服) 중 배자(褙子)를 가리켜 “곧 본국의 몽두의다.”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 궁중 행사를 기록한 진찬(進饌)․진연(進宴) 의궤나 도병(圖屛) 등을 보면 여령들이 황색의 몽두리를 입은 모습이 확인되는데, 대개 섶이 없고 마주 여미며 소매 끝에는 오색 한삼이 달려 있다. 가슴에는 자수를 놓은 대(帶)를 매고,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썼다.
참고문헌
- 유희경.김문자, 1998, 『(개정판)한국복식문화사』, 서울: 교문사 【REF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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