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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전:모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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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문
牧丹紋
ckid costume1345
한글 모란문
한자 牧丹紋
영문(음역) Mo-ranmun
영문(의미) Peony pattern
분류 문양
성별 남녀공용
시대 신라, 고려, 조선
연령 성인
신분 사대부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모란문】



정의

  • 중국의 전통적인 꽃인 모란을 도안한 무늬
  • Peony pattern

해설

모란은 한자로 ‘목단(牧丹)’이라고 쓰며 꽃 중의 왕으로 불릴 만큼 화려하고 장식적이어서 부귀와 번영의 상징으로 많이 쓰였다. 모란은 중국산의 식물이며, 우리나라에서 함박꽃이라고 부르는 작약과 외형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모란은 목본(木本)이고 작약은 초본(草本)인 점이 다르며 모란이 4월에 먼저 피었다가 진 후, 작약이 5월경에 피기 시작한다. 모란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된 시기는 『삼국사기』 선덕여왕 조(善德女王 條)에 “모란화도(牧丹畵圖)와 씨앗이 진평왕(579-632)때에 당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라 신라시대로 추정한다. 모란문은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의 장식무늬로 쓰였고 조선시대에는 부귀(富貴), 다남(多男), 수복(壽福), 평안(平安) 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왕실에서는 물론 민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 모란을 중심에 배열하고 그 주위를 만초넝쿨이 C자형으로 휘감고 있는 모란만초문은 연화만초문과 함께 조선시대직물에 즐겨 사용하던 식물무늬 중 하나이다. 조선전기에는 모란의 형태도 일정하고 만초 넝쿨도 정해진 기본 곡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형화된 모란문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와서는 전기의 전형적인 모란의 틀에서 벗어나 구성 형태도 좀 더 자유롭게 변화되었다. 모란문은 연화 이외에 국화, 매화, 동백, 난초, 복사꽃, 석류꽃과 같은 길상의 의미를 갖는 다양한 꽃들과 결합하여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각종 꽃들 사이에는 새, 나비, 벌과 같은 동물을 넣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복숭아, 석류, 불수감, 여지 같은 과실과 함께 도안하여 다양한 무늬들이 자유롭게 펼쳐졌다. 참고문헌 : 周家琪, 1983, 『中國の 牧丹』, 京都: 美乃美.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금화문 화봉문 천도문 화접문 부용문 costume1346 문자문 文字紋 Munjja-mun Chinese character pattern 남녀공용 조선 아동, 청소년, 성인 왕족, 사대부 문양 길상의 뜻을 지닌 글자를 도안한 무늬 Pattern of the Chinese characters that represent auspicious signs 문자문은 획이 많은 한자 형태와 글자 자체가 갖는 의미 때문에 조형성(造形性)있는 무늬로 발전하였다. 문자문은 직물을 짤 때나 직물 위에 자수 기법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직물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자무늬에는 만자(卍), 수자(壽), 복자(福), 희자(囍)자 등이 있는데 대부분 문자만을 단독으로 하기 보다는 다른 무늬와 함께 복합무늬로 구성되었다. 수부귀(壽富貴)․수복강녕(壽福康寧)․부귀다남자(富貴多男子)․자손창성(子孫昌盛)․오자등과(五子登科) 등 길상의 의미를 갖는 한자를 도안화하여 직조, 자수 또는 금박의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문자문은 조선후기부터 유행되기 시작하였으며 대부분 박쥐무늬 혹은 천도, 석류 등 길상식물무늬와 결합한 경우가 많다. 운학문 용문 원앙문 화접문 연화만초문 costume1347 박쥐문 蝙蝠紋 Bakjuimun Bat pattern 남녀공용 조선 아동, 청소년, 성인 왕족, 사대부 문양 박쥐를 도안화한 무늬 Bat pattern 박쥐무늬는 한자로 표기할때 박쥐 편(蝙)자와 박쥐 복(蝠)자를 써 편복문이라고 하며 박쥐를 의미하는 복(蝠)자가 복(福)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박쥐가 복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박쥐는 새끼를 많이 낳고 오래 사는 동물이라 다남과 장수의 영물로 인식되어 의복이나 장신구, 도자기, 가구, 건축물, 떡살, 능화판 등 여러 기물에 애용되었다. 특히 박쥐 두 마리로 도안한 것은 것은 ‘쌍복(雙蝠)’ 또는 ‘다복(多福)’이라 하였으며, 박쥐 다섯 마리를 사용한 것은 ‘오복(五福)’이라고 하여 직물무늬로 애용하였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의미하였다. 중국에서도 박쥐무늬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는 조선 말기에 특히 많이 사용하였는데 직물무늬뿐만 아니고 자수, 노리개의 형태, 댕기나 화관, 족두리에 붙이는 패물 조각에도 박쥐무늬가 반드시 들어있다. 조선 말기 궁중에서 사용되는 의복과 옷감을 적어놓은 『발기』에 백복문(百蝠紋), 운복문(雲蝠紋)과 같은 무늬 명칭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어 박쥐무늬의 유행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 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천도문 원앙문 포도동자문 부용문 보문a costume1348 반조문 盤雕紋 Banjomun Pattern of bird roundels 남녀공용 고려 성인 군인, 귀족 문양 쟁반이나 받침형태의 외곽선 안에 독수리무늬가 들어있는 모양 A pattern of bird roundels 반조무늬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의 장위복 중 용호하해군의 복식에 처음 보이며 그 외의 장위복에는 반용문(盤龍紋), 반화문(盤花紋)이라는 무늬 명칭이 기록되어있다. 이들 무늬는 모두 반(盤)형, 즉 쟁반이나 받침 형태의 테두리 속 안에 독수리, 용, 꽃 등 길상의 의미를 지닌 무늬를 단순하게 도안하였다. 반조무늬의 전개는 단순하게 도안된 단위무늬를 격자형 혹은 벽돌쌓기 방식으로 엇갈리게 배열한 산점구도가 대부분이다. 이 무늬는 14세기의 고려청자나 1346년에 조성한 철조약사불의 불복장 직물 등을 비롯한 고려 말기 불복장 직물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포도다람쥐문 부용문 잡보문 화접문 원앙문 costume1349 방승문 方勝紋 Bang-seungmun Pattern of triangular-shaped ornaments 남녀공용 조선 성인 왕족, 사대부 문양 마름모 형태의 금전지무늬 A pattern of triangular-shaped ornaments made of gold paper 일상생활에서 기물 중에 길상을 추구하는 기물들을 도안한 일반 보배 무늬이다. 방승(方勝)은 경사스러운 일에 쓰는 보자기의 네 귀나 끈에 금종이로 만들어 다는 장식품이다. 이것은 금종이를 세모로 접어 한쪽에 붉은빛이나 푸른빛의 명주실로 된 술을 붙여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방생(方生)이라고도 부른다. 모양은 두 개의 방승이 겹쳐져 마름모형[菱形]을 이루는데 채승(彩勝)이라고도 한다. 방승보는 불경에 나오는 전륜성왕이 지니고 있었다는 칠보무늬 중 옥녀보(玉女寶)와 형태가 유사하다. 참고문헌 : 오근재, 1987, 『韓國紋樣의 展開-菱花篇』, 서울: 미진사.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보문a 호표문 특경보문 금화문 세화만초문 costume1350 백한문 白鷳紋 Bae-kanmun Silver pheasant pattern 남 조선 성인 관리(문관), 사대부 문양 백한을 소재로 하여 도안한 무늬 Silver pheasant (Lophura nycthemera) pattern 백한(白鷳)은 티베트, 하이난 섬 등지의 산지(山地)에 분포하며 원산지는 중국 남부 고산지대이다. 백한은 닭목 꿩과에 속하는 것으로 꿩과 비슷하나 꼬리가 길어서 마치 봉황과 같은 새이다. 수컷은 몸길이 약 90여 cm 정도이며 화려하고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작고 전체적으로 갈색을 띤다. 얼굴의 피부가 붉게 드러나 있으며 뒷머리에 검정색의 뭉쳐진 형태의 관우가 있다. 백한은 금계, 은계와 더불어 꿩류의 3명조(三名鳥)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대형조류로서 비교적 사람을 잘 따르기에 인간이 오래전부터 사육하였다. 꿩의 한 종류로서 백탁(白鵫), 백치(白雉)라고도 하였으며 태평성대를 알리는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내는 흰 까치나 흰 사슴과 마찬가지로 신성시되었다. 백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자료는 『삼재도회(三才圖會)』, 『대명회전(大明會典)』에 나타나있다. 백한무늬는 중국의 5품관 흉배(胸背)의 무늬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에서는 3품관의 주문으로 사용되었다. 백한흉배는 단종 2년(1454) 『경국대전』에 문관 3품 당상관용으로 기록되었고, 『속대전』에서는 문관 당하관용으로 기록되었다. 지금까지의 그림자료에서는 신숙주(1417-1475)의 초상화에서 처음으로 보이며, 유수(1678-1739?)의 초상화에서 마지막으로 백한흉배가 확인된다. 여러 흉배 중에서 가장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된 것이 백한흉배이다. 연안 김씨(1500년대)의 묘에서 출토된 백한흉배는 중심에 백한을 배치하고 주변에 구름과 바위, 물결 등 십장생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참고문헌

  • 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REF0218】
  • 周家琪, 1983, 『中國の 牧丹』, 京都: 美乃美 【REF0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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