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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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박 | |
| 金箔 | |
| ckid | costume1437 |
|---|---|
| 한글 | 금박 |
| 한자 | 金箔 |
| 영문(음역) | Geumbak |
| 영문(의미) | Gold Imprint |
| 분류 | 염색 |
| 성별 | 기타 |
| 시대 | 삼국, 고려, 조선 |
| 연령 | 기타 |
| 신분 | 기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금박】 | |
정의
- 직물에 금은 가루나 아주 얇은 금은박을 접착제로 붙여 직물 표면에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
- Craft technique of gluing gold and silver power or leaf onto the surface of a textile to create gold patterns
해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에 금박을 하여 옷감에 금문(金紋)을 표현했다.『삼국사기(三國史記)』흥덕왕(興德王) 복식금제(服飾禁制)에는 육두품녀의 고(袴)․상(裳)․표(裱)에 금은니(金銀泥)를 금하였다고 한 기록이 있다. 진덕왕(眞德王) 5년(651)에 당(唐)에 보낸 금총포(金總布)도 금박직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문헌에 금박직물이 쇄금(鎖金)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남아있다.『고려사(高麗史)』에는 문종 26년(1072)과 32년(1078)에 쇄금홍라(鎖金紅羅), 쇄금홍매화라(鎖金紅梅花羅) 등을 송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금박유물은 불복장유물로 여러 점 남아있어 고려시대 화려했던 금박직물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관영공장 중 장치서(掌治署)에 금박장(金箔匠)이 있어 금박생산을 전문적으로 맡아했다. 조선시대에는 인금기술을 쇄금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얇은 금박을 직물에 접착하여 만들었으므로 그 기술도 금박(金箔)이라고 하였다.『경국대전(經國大典)』공전(工典) 경공장에는 전문적으로 금박을 담당하던 금박장(金箔匠)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금박이 대단히 많이 사용되었는데 신분에 따라 금박의 무늬도 다양하여 용문․봉황문․초화문․문자문 등 다양한 도안이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영조대에 사치금지 차원에서 “상방에서 직금방(織錦房)을 영원히 철폐하라.”는 교지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직금제직의 제한과 더불어 금박이 더욱 성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에 금박을 하는 방법에는 니금법(泥金法), 살금법(撒金法), 첩금법(貼金法)이 주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심연옥, 2002, 『한국직물오천년』,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REF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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