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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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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시인의 생애 ===
 
=== 김춘수 시인의 생애 ===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동양화를 배우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웠으며, 경성제국대학 예과에서 철학을 수학하며 사변적 사유를 익혔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해 문학적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훗날 그의 시 세계에 깊은 철학적 사유와 존재론적 질문을 투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주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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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1922~2004) 시인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동양화를 배우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웠으며, 경성제국대학 예과에서 철학을 수학하며 사변적 사유를 익혔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해 문학적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훗날 그의 시 세계에 깊은 철학적 사유와 존재론적 질문을 투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춘수".</ref>
  
1946년 『문장』지에 발표한 "망각"으로 등단한 김춘수는 1950년대 한국 현대시의 형식을 실험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2년에 발표한 『구름과 장미』는 전후 한국시단에 상징주의와 순수시의 미학을 깊게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그는 이후 『사물의 꿈』(1959), 『꽃』(1970), 『처용단장』(1981) 등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기반성과 실험을 지속하였다. 특히 『꽃』에 수록된 동명의 시 "꽃"은 이름 짓기의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묻는 그의 시세계를 집약한 작품으로, 널리 회자된다.{{주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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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문장』지에 발표한 "망각"으로 등단한 김춘수는 1950년대 한국 현대시의 형식을 실험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2년에 발표한 『구름과 장미』는 전후 한국시단에 상징주의와 순수시의 미학을 깊게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그는 이후 『사물의 꿈』(1959), 『꽃』(1970), 『처용단장』(1981) 등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기반성과 실험을 지속하였다. 특히 『꽃』에 수록된 동명의 시 "꽃"은 이름 짓기의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묻는 그의 시세계를 집약한 작품으로, 널리 회자된다.<ref>김춘수, 『꽃』, 민음사, 1970.</ref>
  
 
김춘수는 1965년부터 경북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교육과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동시에 『현대문학』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의 담론 형성과 비평에도 관여했다. 그는 1981년에는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 현대시의 거장으로 존경받았다.
 
김춘수는 1965년부터 경북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교육과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동시에 『현대문학』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의 담론 형성과 비평에도 관여했다. 그는 1981년에는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 현대시의 거장으로 존경받았다.
  
 
=== 김춘수 시인의 시적 특징 ===
 
=== 김춘수 시인의 시적 특징 ===
김춘수의 시 세계는 '언어로 존재를 불러오는 행위로서의 시'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시를 현실의 반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닌, 언어를 통해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김춘수는 시에서 감정을 제거하고, 냉정한 언어와 구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를 그는 '무의미의 시'라 칭하며, 의미 이전의 언어적 긴장과 형식적 완결성을 추구하였다.{{주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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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 세계는 '언어로 존재를 불러오는 행위로서의 시'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시를 현실의 반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닌, 언어를 통해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김춘수는 시에서 감정을 제거하고, 냉정한 언어와 구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를 그는 '무의미의 시'라 칭하며, 의미 이전의 언어적 긴장과 형식적 완결성을 추구하였다.<ref>한세정, "신동엽 시와 예이츠 시의 비교 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3권 제1호, 2022, pp.39.</ref>
  
 
그의 대표작 "꽃"은 시적 존재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화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름 짓기'를 통해 사물이 '존재'로 변화함을 선언한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탐색하는 형이상학적 선언이다.
 
그의 대표작 "꽃"은 시적 존재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화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름 짓기'를 통해 사물이 '존재'로 변화함을 선언한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탐색하는 형이상학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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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시와 순수시 논쟁 ===
 
=== 김춘수 시와 순수시 논쟁 ===
김춘수는 종종 '순수시'의 대표자로 불리며, 참여시와 대비되는 시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순수시라는 개념에 대해 단순히 감정적 아름다움이나 형식적 완성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에게 순수시는 '언어로 존재를 창조하는 고유한 방식'이었고, 이는 시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였다.{{주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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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는 종종 '순수시'의 대표자로 불리며, 참여시와 대비되는 시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순수시라는 개념에 대해 단순히 감정적 아름다움이나 형식적 완성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에게 순수시는 '언어로 존재를 창조하는 고유한 방식'이었고, 이는 시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였다.<ref>박지영, "1960년대 참여시와 두 개의 미학주의 - 김수영, 신동엽의 참여시론을 중심으로 -", 반교어문연구 제20권, 2006, pp.274.</ref>
  
 
1950~60년대 한국 사회가 정치적 혼란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있던 시기에, 김춘수의 시는 오히려 언어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시의 자율성과 본질을 지키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시를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로 보지 않고,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구성하는 도구로 간주했다. 이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현실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김춘수는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1950~60년대 한국 사회가 정치적 혼란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있던 시기에, 김춘수의 시는 오히려 언어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시의 자율성과 본질을 지키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시를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로 보지 않고,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구성하는 도구로 간주했다. 이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현실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김춘수는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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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결과 ==
 
== 연구결과 ==
 
본 연구를 통해 김춘수 시인의 시세계가 언어를 통한 존재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시맨틱 데이터 구축 과정에서 시어 간 의미 연결망을 체계화함으로써 그의 시가 형이상학적 사유와 순수시 미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인문학적 접근이 문학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를 통해 김춘수 시인의 시세계가 언어를 통한 존재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시맨틱 데이터 구축 과정에서 시어 간 의미 연결망을 체계화함으로써 그의 시가 형이상학적 사유와 순수시 미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인문학적 접근이 문학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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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3일 (금) 19:45 판

2025-1 디지털인문학이란 2025-1 디지털인문학이란 3조 위키페이지




3조 - 김춘수






연구목적 및 필요성

3조는 시를 통해 광복 이후 6.25 전쟁과 세 차례의 독재를 거친 험난한 한국의 지난 역사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의 시는 참여시와 순수시라는 양극의 흐름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지표가 된다. 이에 따라 본 프로젝트는 참여시와 순수시라는 시의 계열에 따라 주요 시인들의 작품을 분류하고 이들을 시멘틱 데이터로 구축함으로써 한 시대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1]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에 따라 순수시의 대표적 시인인 김춘수 시인 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김춘수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 활동을 전개하며 ‘의미의 시’라는 독자적 시론을 통해 시가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보다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꽃』에서 보이듯 시적 대상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존재를 환기시키는 방식은 전통적인 서정시의 틀을 넘어서면서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내면과 형이상학을 탐색하려는 순수시의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2]

김춘수는 4.19 혁명, 5.16 군사정변, 유신체제와 같은 시대적 사건 속에서도 직접적인 사회 참여보다는 시 내부의 자율성과 존재 탐구를 시의 핵심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는 사회와 거리를 두고 예술적 자기완결성을 지향한 시인의 전형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참여시 계열의 시인들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3]





연구 대상

김춘수 시인의 생애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동양화를 배우며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웠으며, 경성제국대학 예과에서 철학을 수학하며 사변적 사유를 익혔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해 문학적 기반을 닦았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은 훗날 그의 시 세계에 깊은 철학적 사유와 존재론적 질문을 투영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4]

1946년 『문장』지에 발표한 "망각"으로 등단한 김춘수는 1950년대 한국 현대시의 형식을 실험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2년에 발표한 『구름과 장미』는 전후 한국시단에 상징주의와 순수시의 미학을 깊게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그는 이후 『사물의 꿈』(1959), 『꽃』(1970), 『처용단장』(1981) 등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기반성과 실험을 지속하였다. 특히 『꽃』에 수록된 동명의 시 "꽃"은 이름 짓기의 행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묻는 그의 시세계를 집약한 작품으로, 널리 회자된다.[5]

김춘수는 1965년부터 경북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 교육과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동시에 『현대문학』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의 담론 형성과 비평에도 관여했다. 그는 1981년에는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 현대시의 거장으로 존경받았다.

김춘수 시인의 시적 특징

김춘수의 시 세계는 '언어로 존재를 불러오는 행위로서의 시'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시를 현실의 반영이나 감정의 표현이 아닌, 언어를 통해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김춘수는 시에서 감정을 제거하고, 냉정한 언어와 구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다. 이를 그는 '무의미의 시'라 칭하며, 의미 이전의 언어적 긴장과 형식적 완결성을 추구하였다.[6]

그의 대표작 "꽃"은 시적 존재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화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름 짓기'를 통해 사물이 '존재'로 변화함을 선언한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탐색하는 형이상학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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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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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춘수, 『꽃』


이러한 시적 태도는 김춘수가 지향한 순수시의 미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일체의 사회적 메시지나 현실 참여를 배제한 채 언어 그 자체의 가능성과 미학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는 현실 회피라기보다는, 언어를 정화하고 그 본질에 도달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그의 후기시에서는 불교적 허무주의와 존재의 무상성에 대한 인식도 드러나며, 시는 점차 사유와 명상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김춘수 시와 순수시 논쟁

김춘수는 종종 '순수시'의 대표자로 불리며, 참여시와 대비되는 시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순수시라는 개념에 대해 단순히 감정적 아름다움이나 형식적 완성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에게 순수시는 '언어로 존재를 창조하는 고유한 방식'이었고, 이는 시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였다.[7]

1950~60년대 한국 사회가 정치적 혼란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있던 시기에, 김춘수의 시는 오히려 언어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시의 자율성과 본질을 지키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시를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로 보지 않고,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구성하는 도구로 간주했다. 이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현실도피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김춘수는 일관되게 자신의 시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시맨틱 네트워크 그래프




연구결과

본 연구를 통해 김춘수 시인의 시세계가 언어를 통한 존재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시맨틱 데이터 구축 과정에서 시어 간 의미 연결망을 체계화함으로써 그의 시가 형이상학적 사유와 순수시 미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인문학적 접근이 문학 연구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 유성호, 『한국 현대시의 미학적 지형』, 문학과지성사, 2003.
  2. 김춘수, 『꽃』, 민음사, 1970.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춘수".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춘수".
  5. 김춘수, 『꽃』, 민음사, 1970.
  6. 한세정, "신동엽 시와 예이츠 시의 비교 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3권 제1호, 2022, pp.39.
  7. 박지영, "1960년대 참여시와 두 개의 미학주의 - 김수영, 신동엽의 참여시론을 중심으로 -", 반교어문연구 제20권, 2006, pp.274.



참고 자료

이미지

  • 시인 김춘수의 꽃이 수록된 시와 시론 1집 앞표지.

출처 : 대구일보(https://www.idaegu.com)



논문 및 문헌

  • 김혜련. 「김춘수 시에 나타난 존재 인식의 구조」, 현대문학이론연구, 제32집, 2007, pp. 45–68.
  • 김춘수, 『시작법 강의』, 민음사, 1991.
  • 유성호, 『한국 현대시의 미학적 지형』, 문학과지성사, 2003.
  • 박혜경, "김춘수 시에 나타난 존재론적 인식", 『현대문학이론과 비평』 200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춘수".



신문기사 및 사이트

  • 조현. 「'나는 너를 꽃이라 불렀다' 김춘수, 시로 존재를 부른 사람」, 한겨레, 2017.07.20.

출처: https://www.hani.co.kr

  • 장은정. 「시인 김춘수, 그 존재를 묻는 언어」, 경향신문, 2018.09.01.

출처: https://www.khan.co.kr

  • 네이버 지식백과. 「김춘수 – 한국 현대시인」

출처: https://terms.naver.com

  • 문학과지성사. 「김춘수 시인 소개 및 작품 목록」

출처: https://moonji.com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