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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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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경상좌수영성은 왜군에 함락되었다. 이때 남아 있던 수군과 민간인 25인은 성문 밖 바위 앞에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로 맹세하였다. 그들은 전쟁 기간 내내 바다와 육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싸우다 순절하였다.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경상좌수영성은 왜군에 함락되었다. 이때 남아 있던 수군과 민간인 25인은 성문 밖 바위 앞에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로 맹세하였다. 그들은 전쟁 기간 내내 바다와 육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들의 공적은 한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609년 이안눌(1571-1637)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후 지역 주민들의 청원을 받으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안눌은 25의 인적사항과 행적을 조사하여 책으로 펴내고, 이들의 집 문 앞에 “의용(義勇)”이란 푯말을 걸게 하였다. 1806년 부임한 부사 오한원(1750-?)은 25인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1853년 경상좌수사 장인식(1802-?)이 이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우며 의용단이라 칭하였고, 재실을 지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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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적은 한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609년 이안눌(1571-1637)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후 지역 주민들의 청원을 받으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안눌은 25의 인적사항과 행적을 조사하여 책으로 펴내고, 이들의 집 문 앞에 “의용(義勇)”이란 푯말을 걸게 하였다. 1806년 부임한 부사 오한원(1750-?)은 25인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1853년 경상좌수사 장인식(1802-?)이 이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우며 의용단이라 칭하였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25의용단은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74년에는 25인의 이름을 각각 새긴 비석 25기를 건립하였고, 2001년에는 25인의 위패를 모신 의용사를 건립하였다. 현재 의용단 경내에는 정문, 관리사, 내삼문, 의용사가 있고, 매년 음력 9월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25의용단은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74년에는 25인의 이름을 각각 새긴 비석 25기를 건립하였고, 2001년에는 25인의 위패를 모신 의용사를 건립하였다. 현재 의용단 경내에는 정문, 관리사, 내삼문, 의용사가 있고, 매년 음력 9월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2022년 4월 27일 (수) 11:09 판

25의용단
Uiyongdan Altar
25의용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25의용단
영문명칭 Uiyongdan Altar
한자 25義勇壇
주소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362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
지정일 1972년 6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7,518㎡
웹사이트 25의용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의 민초 25의용(義勇)과의 역사적 만남

임진왜란으로 삶의 터전인 수영성이 위기에 처하자, 성문 밖 선서바위에 모여 피로써 맹세한 후 7년간 왜적과 맞서 싸운 의로운 스물다섯 분의 수병(守兵)과 성민(城民)이 있었다.

임란이 발생한 지 17년 후(광해군 원년)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백성의 탄원서에 따라 25인의 행적을 찾아 그의 집 문 앞에 “의용(義勇)”이란 푯말을 걸어 그 뜻을 기리도록 하고, 정방록(旌榜錄)에 기록하였다. 또한 순조 때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이들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하고, 글을 지어 포상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수영사적공원에 조성된 25의용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에는 25인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9월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수영의 정신적 뿌리인 스물다섯 분의 존함을 기억하고 나라를 위한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수영성길로 25의용(義勇)을 모셔, 그 충절의 뜻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목숨을 걸고 수영성을 지켜낸 25의용(義勇)과의 역사적 만남을 통하여 호국정신을 되새기고, 그들이 품었던 높은 뜻을 계승해 나가고자 한다.

  • 25의용

김옥계(金玉戒), 정인강(鄭仁彊), 이희복(李希福), 최송엽(崔松葉), 최수만(崔守萬), 박지수(朴枝樹), 김팽량(金彭良), 박응복(朴應福), 심남(沈男), 이은춘(李銀春), 정수원(鄭壽元), 박림(朴林), 신복(辛福), 이수(李壽), 최한연(崔汗連), 최한손(崔汗孫), 최막내(崔莫乃), 최말량(崔唜良), 김달망(金達亡), 김덕봉(金德俸), 이실정(李實貞), 김허농(金許弄), 주난금(朱難金), 김종수(金從守), 김진옥(金進玉)

영문

Uiyongdan Altar

Uiyongdan, meaning “Altar of the Righteous and Brave,” was established in 1853 to honor 25 navy personnel and civilians wh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roically fought the enemy at Gyeongsangjwasuyeong Fortress.

Soon after the outbreak of the invasion in May 1592, the fortress was captured by the Japanese troops. The 25 men who survived the battle swore in front of a cliff outside of the fortress that they would fight to their death against the Japanese. Throughout the war, they used methods of guerilla warfare to attack the Japanese army by sea and by land, eventually each sacrificing their lives in the fight.

For some time, their heroic resistance remained unknown to the public, but in 1609, upon the request of the residents of Dongnae, the newly appointed local magistrate Yi An-nul (1571-1637) ordered an investigation to verify all 25 members of the group and their contributions.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were recorded in a book. Also, plaques calligraphed with characters meaning “Righteous and Brave” were hung in front of each of their houses. O Han-won (1750-?), who received the post of the magistrate of Dongnae in 1806, exempted the descendants of the 25 men from the labor duty. In 1853, the East Gyeongsang-do Navy Commander Jang In-sik (1802-?) erected a stele and established an altar named Uiyongdan where veneration ceremonies for the 25 heroes were performed each spring and autumn.

The altar was designated as a Busan Monument in 1972. In 1974, 25 stone monuments each bearing the name the 25 men were made, and in 2001, Uiyongsa Shrine was constructed to hold the spirit tablets of the 25 men. Currently, the shrine complex consists of a main gate, a custodian’s residence, an inner gate, and a shrine. A veneration ritual is performed each year in the 9th lunar month.

  • 25 Heroes

Kim Ok-gye, Jeong In-gang, Yi Hui-bok, Choe Song-yeop, Choe Su-man, Bak Ji-su, Kim Paeng-ryang, Bak Eung-bok, Sim Nam, Yi Eun-chun, Jeong Su-won, Bak Rim, Sin Bok, Yi Su, Choe Han-yeon, Choe Han-son, Choe Mak-nae, Choe Mal-ryang, Kim Dal-mang, Kim Deok-bong, Yi Sil-jeong, Kim Heo-nong, Ju Nan-geum, Kim Jong-su, Kim Jin-ok

영문 해설 내용

25의용단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수영성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수군과 민간인 25인을 기리기 위해 1853년에 건립되었다.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경상좌수영성은 왜군에 함락되었다. 이때 남아 있던 수군과 민간인 25인은 성문 밖 바위 앞에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로 맹세하였다. 그들은 전쟁 기간 내내 바다와 육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들의 공적은 한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609년 이안눌(1571-1637)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후 지역 주민들의 청원을 받으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안눌은 25의 인적사항과 행적을 조사하여 책으로 펴내고, 이들의 집 문 앞에 “의용(義勇)”이란 푯말을 걸게 하였다. 1806년 부임한 부사 오한원(1750-?)은 25인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1853년 경상좌수사 장인식(1802-?)이 이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세우며 의용단이라 칭하였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25의용단은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74년에는 25인의 이름을 각각 새긴 비석 25기를 건립하였고, 2001년에는 25인의 위패를 모신 의용사를 건립하였다. 현재 의용단 경내에는 정문, 관리사, 내삼문, 의용사가 있고, 매년 음력 9월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