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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신급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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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9일 (월) 15:16 판 (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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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신급 정문
디지털포천문화대전
대표명칭 효자 신급 정문
한자 孝子 申礏 旌門
주소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734-2
지정번호 포천시 향토유적 제9호
지정일 1986년 4월 9일
소유자 사유



해설문

국문

숙종 29년(1703)에 신급(申礏, 1543~1592)의 효행을 표창해 내린 정려문이다. 일찍이 학문에 힘써 경서를 통달했고 특히 역사에 밝았다. 선조 16년(1583)에 상소를 올려 이이(李珥, 1536~1584), 성혼(成渾, 1535~1598)에 대한 탄핵의 부당함을 지적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천으로 피난하는 도중에, 노모와 가족이 적에게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형은 멀리 떠나고 두 동생은 모두 순절하였으며 노모마저 돌아가셨으니,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살아남으리오” 하면서 절벽 아래로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숙종 29년(1703)에 효자 정려를 내리고 정각을 세웠다. 당초 무등산 아래에 세웠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어 1980년에 현 위치에다 재건립했다. 5대손 신윤하(申胤夏)도 부모에 대한 효행으로 고종 2년(1865)에 효자 정문을 받아, 현재 같은 곳에 편액을 나란히 걸어놓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자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