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백용성선사 화과원 유허지
HeritageWiki
함양 백용성선사 화과원 유허지 |
|
대표명칭 | 함양 백용성선사 화과원 유허지 |
---|---|
한자 | 咸陽 白龍城禪師 華果院 遺墟址 |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50 |
지정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제229호 |
지정일 | 2000년 8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 |
수량/면적 | 13709 |
웹사이트 | 함양 백룡성선사 화과원 유허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백용성 선사 화과원 유허지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운동가인 백용성(白龍城) 선사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 위해 개척한 농장이다.
참선과 농사를 함께 하는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제창했던 백용성은 3·1운동으로 인해 3년간의 옥살이 후 서울 대각사에서 대각교(大覺敎)를 만들어서 새로운 불교 운동과 국민 계몽 운동을 펼쳤다. 선사의 법명은 진종(震鍾)이고 법호는 용성이다.
화과원 유허지는 백운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하며 현재 이곳에는 법당 터, 선방 터 등 9개의 건물터와 축대, 석조물, 가마터 등이 남아 있고 고목이 된 배나무 등의 과일나무가 주변에 남아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1864-1940)이 개척한 화과원이라는 농장이 있던 자리다. 백용성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백용성은 참선과 농사를 함께 하는 ‘선농불교’를 제창하였으며, 백운산의 산림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과수를 심었다. 이를 통해 사원을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하고 스님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독립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불교개혁과 국민 계몽 운동을 펼쳤다.
현재 이곳에는 법당 터와 선방 터 등 9개의 건물 터와 축대, 가마터 등이 남아 있고, 최초 설립 당시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배나무, 밤나무, 감나무 등이 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함양백룡성선사화과원유허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2290000
- 함양 백룡성선사 화과원 유허지, 디지털함양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454
- “3·1운동 100년 경남의 독립운동 - (18) 함양”, 경남신문, 2020.03.10.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32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