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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동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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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7월 18일 (토) 16: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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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동호정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동호정
영문명칭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한자 咸陽 東湖亭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
지정일 2005년 10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東湖 章萬里)가 관직에서 물러나 낚시를 즐기며 지내던 곳에 만든 정자이다. 1895년 10대 손인 장대운, 장서부, 장서진 등이 만들고 그의 호를 따서 ‘동호정’이라 하였는데, 1936년 동호정을 다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만리는 조선 선조 때 학자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의주로 몽진(蒙塵)할 때 10여 리를 업고 피난하였다. 이듬해 피난지에서 향년 40세에 병으로 타계했다. 선조는 그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세불망자(永世不忘子)’라는 교지를 내리고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봉하였다.

동호정은 화림 계곡에 있는 정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나무 계단이나 기둥은 도끼로 툭툭 쳐서 만들어 투박하고 거친 멋이 있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널찍한 너럭바위 차일암에는 영가대, 금적대 등의 각석(刻石)글자나 무늬 따위를 새긴 돌이 남아있다. 강 건너편 산기슭에는 약 10여km에 이르는 선비문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영문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호: 동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에 건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36년에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교지를 내리고, 1604년에는 공신의 칭호를 내렸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정자 가운데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한 바위에는 글자나 무늬 등을 새긴 것이 남아있다. 강 건너편 산기슭에는 약 10여 km에 이르는 선비문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