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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함양동호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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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3810000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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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Donghojeong Pavilion, Ha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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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咸陽 東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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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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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東湖 章萬里)가 관직에서 물러나 낚시를 즐기며 지내던 곳에 만든 정자이다. 1895년 10대 손인 장대운, 장서부, 장서진 등이 만들고 그의 호를 따서 ‘동호정’이라 하였는데, 1936년 동호정을 다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동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호정은 호반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화림동의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아래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어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
장만리는 조선 선조 때 학자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의주로 몽진(蒙塵)할 때 10여 리를 업고 피난하였다. 이듬해 피난지에서 향년 40세에 병으로 타계했다. 선조는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세불망자(永世不忘子)’라는 교지를 내리고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봉하였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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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정은 화림 계곡에 있는 정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나무 계단이나 기둥은 도끼로 툭툭 쳐서 만들어 투박하고 거친 멋이 있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널찍한 너럭바위 차일암에는 영가대, 금적대 등의 각석(刻石)글자나 무늬 따위를 새긴 돌이 남아있다. 강 건너편 산기슭에는 약 10여km에 이르는 선비문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초고====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을 갔던 장만리(章萬里)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것이다. 1936년에 중수를 하였으며, 이후 지붕과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장만리는 1583년에 관직에 나아갔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선조를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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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ojeong Pavilion, Hamyang'''
  
정자가 세워진 곳은 장만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내던 곳으로, 그의 9대손인 장재헌(章載憲) 등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으며, 정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동호(東湖)를 따서 지은 것이다.  
+
This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895 by the descendants of Jang Man-ri (pen name: Dongho), a loyal subjec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936.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
Upon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 Jang Man-ri was escorting King Seonjo (r. 1567-1608) to refuge when they were met by Japanese invaders, so he carried the king on his back and ran for several kilometers to save him. For this reason, King Seonjo commended him for his loyalty, bestowing upon him a royal edict which reads “He who shall never be forgotten,” and also bestowed him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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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ace where the pavilion is located, Hwarimgyegok Valley, is known for its dense forests and bizarrely shaped boulders which create an outstanding landscape that was favored by the intellectual elite of the Joseon period, who built a number of pavilions in this valley. Among the remaining pavilions, Donghojeong is the largest and has the most elaborate painted designs. On the massive, flat rock emerging from the clear waters in front of the pavilion, there are many calligraphic inscriptions and engraved designs which were made by the literati who visited this place over the centuries.  
동호정은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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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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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는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호: 동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에 건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36년에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동 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 세 곳의 정자가 남아있으며, 그중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1936년에 중수하였고, 이후에도 지붕과 단청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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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교지를 내리고, 1604년에는 공신의 칭호를 내렸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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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가 세워진 화림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정자 가운데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널찍한 바위에는 글자나 무늬 등을 새긴 것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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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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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 heights=3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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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함양동호정전경.jpg| 동호정과 너럭바위 전경<ref>[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383 너럭바위와 조화를 이룬, 함양 동호정], 선비 문화의 산실 누정, 지역N문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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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 『함영 거연정 외 3개소 실측조사보고서』, 함양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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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영 거연정 외 3개소 실측조사보고서』, 함양군, 2012. →안내판에는 1890년에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 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건립 시기가 1895년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의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
→안내판에는 1890년에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 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건립 시기가 1895년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의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
 
 
* 함양동호정,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803810000#
 
* 함양동호정,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803810000#
 
* 함양 동호정,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 함양 동호정,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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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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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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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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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재자료]]
 
[[분류:문화재자료]]
 
[[분류:누정]]
 
[[분류: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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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
[[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함양 동호정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동호정
영문명칭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한자 咸陽 東湖亭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
지정일 2005년 10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東湖 章萬里)가 관직에서 물러나 낚시를 즐기며 지내던 곳에 만든 정자이다. 1895년 10대 손인 장대운, 장서부, 장서진 등이 만들고 그의 호를 따서 ‘동호정’이라 하였는데, 1936년 동호정을 다시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만리는 조선 선조 때 학자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의주로 몽진(蒙塵)할 때 10여 리를 업고 피난하였다. 이듬해 피난지에서 향년 40세에 병으로 타계했다. 선조는 그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세불망자(永世不忘子)’라는 교지를 내리고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봉하였다.

동호정은 화림 계곡에 있는 정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나무 계단이나 기둥은 도끼로 툭툭 쳐서 만들어 투박하고 거친 멋이 있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널찍한 너럭바위 차일암에는 영가대, 금적대 등의 각석(刻石)글자나 무늬 따위를 새긴 돌이 남아있다. 강 건너편 산기슭에는 약 10여km에 이르는 선비문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영문

Donghojeong Pavilion, Hamyang

This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895 by the descendants of Jang Man-ri (pen name: Dongho), a loyal subject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936.

Upon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 Jang Man-ri was escorting King Seonjo (r. 1567-1608) to refuge when they were met by Japanese invaders, so he carried the king on his back and ran for several kilometers to save him. For this reason, King Seonjo commended him for his loyalty, bestowing upon him a royal edict which reads “He who shall never be forgotten,” and also bestowed him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The place where the pavilion is located, Hwarimgyegok Valley, is known for its dense forests and bizarrely shaped boulders which create an outstanding landscape that was favored by the intellectual elite of the Joseon period, who built a number of pavilions in this valley. Among the remaining pavilions, Donghojeong is the largest and has the most elaborate painted designs. On the massive, flat rock emerging from the clear waters in front of the pavilion, there are many calligraphic inscriptions and engraved designs which were made by the literati who visited this place over the centuries.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호: 동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에 건립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36년에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교지를 내리고, 1604년에는 공신의 칭호를 내렸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정자 가운데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단청이 화려하다. 정자 아래에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널찍한 바위에는 글자나 무늬 등을 새긴 것이 남아있다.

갤러리

참고자료

주석

  1. 너럭바위와 조화를 이룬, 함양 동호정, 선비 문화의 산실 누정, 지역N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