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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carved Stupas of Hakdoam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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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two niches carved inside a tall rock face at the entrance to Hakdoam Hermitage were made to enshrine the relics of the monk Chwigeun and a female lay worshiper named Woryeong. A stupa typically refers to a free-standing stone structure shaped like a small pagoda that enshrines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However, rock-carved stupas like these became popular in the 19th century toward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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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 image depicts the shape of a stele carved in low relief with a deep rectangular niche at the top. The niches would have each held a reliquary, but these are missing. The one on the left belongs to Woryeong and was made in 1819 according to its inscription, while the one on the right belongs to Chwigeun and is presumed to date to around the same time. Notably, Woryeong’s stupa was inscribed with characters meaning “divine jewels” rather than “sarira,” which refers to a Buddhist monk’s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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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h images measure over 1 m in height, making them among the tallest extant rock-carved stupas in Korea. Furthermore, because of the known names of the owners and year of completion, they are important cultural heritages that serve as a reference point in the study of 19th-century rock-carved stupas.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학도암 입구 큰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마애탑은 취근 스님의 사리와 여성 불자인 월영의 유골을 모신 탑이다. 원래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탑 형태로 만드는 구조물이다. 마애사리탑은 조선시대 말인 19세기부터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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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암 입구 큰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마애탑은 취근 스님의 사리와 여성 불자인 월영의 유골을 모신 탑이다. 원래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탑 형태로 만드는 구조물이다. 마애사리탑은 조선시대 말인 19세기부터 유행하였다.
  
두 사리탑 모두 평평한 바위 면에 음각으로 비석 모양을 새기고, 윗부분에 사리함을 보관하는 공간을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다. 사리를 보관하는 용구는 없어졌다. 왼쪽이 월영의 것인데, 조성 시기가 새겨져 있어 181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의 유골을 가리키는 “사리”라는 명칭 대신 “신령스러운 구슬”이라는 뜻의 “영주”를 모신 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오른쪽 취근 스님의 사리탑은 모양과 돌을 다듬는 방식이 월영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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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리탑 모두 평평한 바위 면에 음각으로 비석 모양을 새기고, 윗부분에 사각형의 깊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에는 사리함을 보관했을 것으로 보이나, 사리를 보관하는 용구는 없어졌다. 왼쪽이 월영의 것이고 조성 시기가 새겨져 있어 181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것은 취근 스님의 사리탑이고 월영의 것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영의 사리탑에는 스님의 유골을 가리키는 “사리”라는 명칭 대신 “신령스러운 구슬”이라는 뜻의 “영주”를 모신 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사리탑들은 높이가 1m 이상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마애사리탑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또한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서 19세기 마애사리탑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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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리탑들은 높이가 1m 이상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마애사리탑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또한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서 19세기 마애사리탑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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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서울 학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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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0일 (월) 11:38 기준 최신판

학도암 마애사리탑
Rock-carved Stupas of Hakdoam Hermitage
학도암 마애사리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학도암 마애사리탑
영문명칭 Rock-carved Stupas of Hakdoam Hermitage
한자 鶴到庵 磨崖舍利塔
주소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로14다길 89 (중계동)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64호
지정일 2015년 8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건2점
웹사이트 학도암 마애사리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학도암 입구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마애사리탑은 취근스님의 사리탑과 출가를 하지 않고 세속에서 사는 불제자 월영의 영주탑이다. 평평한 바위 면에 음각으로 비 모양을 새겼으며, 윗부분에는 사리함을 보관하는 공간을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사리를 보관하는 용구는 없어졌다.

사리탑은 취근선사의 선풍을 따라 모양이 매우 간결하며, ‘환○당 선사 취근탑’이라고 새겨져 있어 스님의 당호와 법명을 알 수 있다.

여성 불자였던 영월의 영주탑은 조선 순조 때인 1819년에 조성되었다. 영주탑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월영은 화장하여 유골을 수습한 것으로 보이며 스님의 유골을 지칭하는 ‘사리’라는 명칭 대신 ‘영주(靈珠, 신령스러운 구슬)’라는 이름을 붙인 점이 특이하다.

마애사리탑은 조선시대 말인 19세기부터 병풍석이 많은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학도암의 마애사리탑은 바위가 많은 불암산에 조성되었는데, 이 두 마애사리탑은 모양과 돌을 다듬는 방식이 비슷하여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마애사리탑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새겨진 글을 통해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서 19세기 마애사리탑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영문

Rock-carved Stupas of Hakdoam Hermitage

These two niches carved inside a tall rock face at the entrance to Hakdoam Hermitage were made to enshrine the relics of the monk Chwigeun and a female lay worshiper named Woryeong. A stupa typically refers to a free-standing stone structure shaped like a small pagoda that enshrines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However, rock-carved stupas like these became popular in the 19th century toward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Each image depicts the shape of a stele carved in low relief with a deep rectangular niche at the top. The niches would have each held a reliquary, but these are missing. The one on the left belongs to Woryeong and was made in 1819 according to its inscription, while the one on the right belongs to Chwigeun and is presumed to date to around the same time. Notably, Woryeong’s stupa was inscribed with characters meaning “divine jewels” rather than “sarira,” which refers to a Buddhist monk’s relics.

Both images measure over 1 m in height, making them among the tallest extant rock-carved stupas in Korea. Furthermore, because of the known names of the owners and year of completion, they are important cultural heritages that serve as a reference point in the study of 19th-century rock-carved stupas.

영문 해설 내용

학도암 입구 큰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마애탑은 취근 스님의 사리와 여성 불자인 월영의 유골을 모신 탑이다. 원래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탑 형태로 만드는 구조물이다. 마애사리탑은 조선시대 말인 19세기부터 유행하였다.

두 사리탑 모두 평평한 바위 면에 음각으로 비석 모양을 새기고, 윗부분에 사각형의 깊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에는 사리함을 보관했을 것으로 보이나, 사리를 보관하는 용구는 없어졌다. 왼쪽이 월영의 것이고 조성 시기가 새겨져 있어 1819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의 것은 취근 스님의 사리탑이고 월영의 것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영의 사리탑에는 스님의 유골을 가리키는 “사리”라는 명칭 대신 “신령스러운 구슬”이라는 뜻의 “영주”를 모신 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사리탑들은 높이가 1m 이상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마애사리탑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또한 주인공과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서 19세기 마애사리탑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