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산청 대원사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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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대웅전 왼편의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는 부처이자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불상 안에서 경전을 비롯한 다양한 복장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조성 경위 등을 기록한 발원문도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조각승 초변(楚卞, 1680∼1706)이 1700년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것임이 밝혀졌다.

연꽃을 형상화한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 불상은 보관(寶冠)을 쓴 채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손은 손바닥이 바깥으로 향하게 해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무릎 위쪽에 놓은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다리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넓은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으며, 가늘고 긴 눈에 미소가 있는 얇은 입술 등이 원만한 인상을 준다.

이 불상은 조선후기 조각승의 계보와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자료들이다.

*복장유물의 종류와 수량, 출토 경위 등에 대한 정보 찾을 수 없음 – 확인 필요함.

  • 불상은 2019년에 대원사 원통보전에 다시 봉안되었다.
  • 불상 뒤의 탱화는 천수천안관음상을 원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 원통전은 관음보살을 모시는 곳이다. 전각의 이름은 ‘모든 곳에 빠짐없이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능력이 모든 곳에 통함을 나타낸다. (흥국사 원통전 항목 참조)대원사의 원통전은 1967년에 중창되었으며, 열십자(十)형 지붕의 네 방향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고 있어 화려한 모습이 돋보인다.
  •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48년에 연기(緣起) 조사가 평원사(平原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사되었던 것을 조선 숙종 11년(1685)에 재건하였다. 1914년의 화재로 인해 전소된 사찰을 3년 후 복원했으나, 1948년 여수순천 진압부대에 의해 전소된 후 폐혀가 되었다. 1955년 만허당 법일(法一, 1904-1991) 비구니 스님이 페허였던 사찰을 중창한 이후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8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운영중이다.

1차 수정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으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관음보살은 연꽃을 형상화한 화려한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손은 손바닥이 바깥으로 향하게 해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무릎 위쪽에 놓은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다리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넓은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으며, 가늘고 긴 눈에 뭉툭하면서도 큼직한 코, 미소가 있는 얇은 입술 등이 원만한 인상을 준다.

불상 안에서 경전과 발원문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확인되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문의견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으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 (문장 순서 변경 필요.)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뒷문장은 맨 뒤 문단으로 이동)
    •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으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 보살상 내부에서는 발원문, 다라니경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그 중 발원문을 통해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 보살상과 복장유물의 가치를 언급할 필요 있음 -> 이 보살상은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봉안처, 조성시기, 제작배경, 조성자 등을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승의 계보와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작으로서 조선후기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금은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목조의 관음보살은 아담한 크기로 화려한 연화좌에 앉았으며, 아래로 지긋하게 바라다 보는 눈과 입가의 미소가 원만한 인상을 준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양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인의 손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다리와 대좌를 상현좌의 형식 등은 초변의 스승인 색난(色難)의 대표적 특징을 계승한 것이다.
      불상의 복장 내부에서 발원문과 다라니, 경책 등이 확인되었으며, 조선후기 조각승의 계보와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으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관음보살은 연꽃을 형상화한 화려한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손은 손바닥이 바깥으로 향하게 해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무릎 위쪽에 놓은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다리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넓은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으며, 가늘고 긴 눈에 뭉툭하면서도 큼직한 코, 미소가 있는 얇은 입술 등이 원만한 인상을 준다.
      불상 안에서 경전과 발원문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차 수정

대원사 목조보살좌상은 모든 환난을 구제하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시대의 승려 조각가 초변(楚卞, 1680~1706)이 숙종 26년(1700) 지리산 무위암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으며, 2019년 대원사 원통보전에 모셔졌다.

관음보살은 연꽃을 형상화한 화려한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손은 손바닥이 바깥으로 향하게 해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무릎 위쪽에 놓은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다리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넓은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으며, 가늘고 긴 눈에 뭉툭하면서도 큼직한 코, 미소가 있는 얇은 입술 등이 원만한 인상을 준다.

보살상 안에서 발원문과 다라니경 등 다양한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발원문을 통해 봉안처, 조성시기, 제작배경, 조성자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조선 후기 승려 조각가의 계보와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