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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성 동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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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성 동안문 泰安邑城 東鴈門
Goto.png 종합안내판: 태안읍성



해설문

국문

태안읍성 동안문은 태안읍성의 동쪽 성문이다. 1417년(태종 17) 처음 성을 쌓을 당시에는 입구의 폭이 약 4.8m이고 옹성*은 없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입구의 폭을 약 3.6m로 좁히고 옹성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동안문 입구에는 개거식** 문루를 세우고 바깥에는 해자***와 해자를 건너는 적교****를 설치하였다. 안쪽에는 동헌을 비롯한 관아 시설이 자리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의 태안읍성 전투와 일제강점기 읍성훼철령, 근현대 시기의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읍성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2020년 태안읍성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후부터 본격적인 발굴과 정비를 추진하여 2023년 동문 일대의 성벽과 문루를 복원하였다.

문루는 문헌과 발굴 조사를 토대로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개거식 형태의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

화남문(華南門)이라는 이름이 전하는 남문과 달리 동문은 이름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2023년 군민 공모를 통해 승전 등의 희소식을 전하는 길조인 기러기와 동문의 의미를 조합하여 동안문(東鴈門)으로 결정하였다. 이는 태안군이 상서롭고 복된 고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에 둘러친 성벽
  • 개거식: 성문 위에 석재가 없는 문루 형식
  • 해자: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 바깥 둘레를 따라 판 구덩이
  • 적교: 해자를 건너기 위한 다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동안문은 태안읍성의 동쪽 성문으로 2023년에 다시 지었다.

태안읍성은 1417년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일제강점기의 읍성 훼철령, 20세기 초의 도시화 과정 등을 거치며, 동문 터와 성벽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실되었다. 2020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와 문헌 연구가 이루어졌다.

동안문 성벽과 문루는 이러한 연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복원되었다. 1417년 처음 읍성이 축조될 당시에는 입구의 폭이 약 4.8m인 문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방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입구의 폭을 약 3.6m로 좁히고 옹성을 추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팔작지붕을 얹은 동안문 문루는 옹성을 갖추었고, 바깥에는 해자와 해자를 건너는 다리도 설치하였다.

이 문의 이름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아, 2023년 군민 공모를 통해 동안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안문은 “동쪽 기러기의 문”이라는 뜻이다. 기러기는 희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여겨지며, 이는 태안군이 상서롭고 복된 고장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