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성산 패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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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원성산패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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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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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삼한시대의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들이 층을 이루며 산처럼 쌓인 유적이다. 이 조개껍질 층 속에는 쓰고 버렸던 여러 가지 도구들도 포함되어 있고, 조개껍질 층의 아래에서는 철기를 만들던 야철지冶鐵地도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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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이란 고대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이 무덤처럼 쌓인 유적을 의미한다.  
창원공업기지의 조성에 앞서 1974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주관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과 부산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에서 많은 종류의 토기와 철기, 뼈와 돌로 만든 골각기와 석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물들은 전시관에 진열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조개껍질 층의 단면과 야철지는 별도의 시설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철 소재를 녹이고 두드려 각종 철기를 만들었던 야철지는 우리나라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세기 경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는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樂浪대방帶方과 일본열도의 왜倭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성산패총의 야철지는 이러한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한 창원시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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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은 1973년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가 시행되어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4년부터 발굴한 것이다. 패총 아래 철을 만들던 작업장과 삼한시대에 형성된 패총, 그 위에 쌓인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고====
 
패총(貝塚)은 크게 수렵, 어로, 채집에 의지하여 살아온 옛 사람들이 조개 등의 패류(貝類)를 먹고 버린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 등이 함께 쌓여 이루어진 유적으로 ‘조개더미’라고도 부른다.  
 
  
창원 선상패총은 마산만에 면한 창원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높이 49m의 독립된 구릉 위에 있는 삼한시대의 패총이다. 이 패총은 1968년 부산대학교에 의해 1차 발굴이 시도되었고, 1974년 2월부터 5월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주관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과 부산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재실시하였다. 이 패총의 퇴적층은 동쪽(C지구)·북쪽(B지구) 및 서남쪽(A지구)의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발굴결과, C지구에서 민무늬토기[無文土器]·반달칼·돌도끼·붉은간토기[紅陶]·김해토기, A·B지구에서 김해토기·신라토기·철기류·오수전(五銖錢)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이곳이 청동기시대 말기부터 원삼국시대[삼한시대]를 지나 삼국시대에 걸친 수백년동안 형성된 유적임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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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 아래 야철지*는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과 일본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 성산패총 아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철이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이다.
  
패각층 아래에서 철이 녹아 흐른 야철지(冶鐵址)가 2군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세기 경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는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樂浪) 대방(帶方)과 일변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성산패총의 야철지는 동래패총에서 발굴된 같은 시기의 제철유적과 함께 한국 고대 제철사(製鐵史) 관계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성장한 창원시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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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에서는 민무늬 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한나라 오수전(五銖錢)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중 가장 의미 있는 유물은 한나라 오수전이다. 한 무제(漢武帝, 기원 전 141~87 재위) 때 만들어진 오수전은 패총의 조성 시기 및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국제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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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 위에 조성된 삼국시대의 성곽은 5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서는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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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패총은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 창원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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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철지(冶鐵址): 철을 만들던 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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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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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 Mound in Seongsan, Cha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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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hell mound is made of clam, oyster, and other shellfish shells and waste disposed of by prehistoric people. Sometimes, dwelling sites and artifacts including earthenware and stone tools are found near shell mounds. These remains are important resources to understand the prehistoric period, including the natural environment and the culture and lives of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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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hell mound in Seongsan was discovered in 1973 when, during the construction of an industrial complex, a layer of land was removed from a hillside revealing a pile of shellfish shells and some earthenware fragments. This shell mound, as well as an iron production site and remains of a fortress wall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were discovered during the excavations that began in 1974. These archaeological findings provide the earliest evidence of a settlement in the Changwon area and demonstrate a few important aspects of life from about 300 BCE until the end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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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ron processing site, in particular, is a valuable discovery that marks the beginning of the Iron Age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ccording to the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Sanguozhi) written in China in the 3rd century CE, the southern coastal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produced large amounts of iron which was exported to the Lelang and Daifang Commanderies in the northern part of the peninsula and to Japan. Thus, it is presumed that the iron produced at this site was exported overs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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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artifacts excavated on this site include undecorated pottery, semilunar stone knives, and spindle whorls. Also, coins minted in Han China during the reign of Emperor Wu (r. 141-87 BCE) were found on this site, providing evidence of trad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China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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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tress wall discovered above the shell mound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after the 5th century. Coins minted in Tang China (618-907) were also found around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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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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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버린 조개나 굴 등 패류의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다. 패총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살던 집터나 토기, 석기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의 문화, 자연환경, 사람들의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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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패총은 1973년 이 일대에 공업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1974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패총, 철을 만들던 작업장, 패총 위에 쌓인 삼국시대의 성곽 등이 발견되었다.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공업도시 창원의 역사적 근원으로 여겨진다.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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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철을 만들던 작업장은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에 따르면,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 일본까지 수출되었다고 한다. 즉 이곳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철이 해외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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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에서는 민무늬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 때 만들어진 오수전(五銖錢)이라는 화폐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패총의 조성 시기 및 당시 한국과 중국 간의 국제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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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 위에 조성된 성곽은 5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서는 당나라 때의 화폐인 개원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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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요소'''==
* 창원 성산 패총 (昌原 城山 貝塚),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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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des===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8024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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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창원 성산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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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백과 ‘창원 성산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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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철지 || Place || 야철지 || 철 소재를 녹이고 두드려 각종 철기를 만들었던 야철지가 2군데에서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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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240호에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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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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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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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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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관리국, 『문화재대관 사적편 개정판 上』, 1998,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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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성산 패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8024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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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기계공업단지 중심에 우뚝 서있는 ‘사적 제240호 창원 성산 패총’”, 월간 문화재사랑, 2016.07.01.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30640&bbsId=BBSMSTR_1008&mn=NS_01_09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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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성산 패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7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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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성산 패총’,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90599&cid=40942&categoryId=3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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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
[[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9월 27일 (월) 00:40 기준 최신판

창원 성산 패총
Shell Mound in Seongsan, Changwon
창원 성산 패총,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대표명칭 창원 성산 패총
영문명칭 Shell Mound in Seongsan, Changwon
한자 昌原 城山 貝塚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외동 853-7
지정번호 사적 제240호
지정일 1974년 11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관리자 창원시
시대 철기시대
수량/면적 54,230㎡
웹사이트 창원 성산 패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패총이란 고대 사람들이 먹고 버렸던 조개껍질이 무덤처럼 쌓인 유적을 의미한다.

성산패총은 1973년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공사가 시행되어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4년부터 발굴한 것이다. 패총 아래 철을 만들던 작업장과 삼한시대에 형성된 패총, 그 위에 쌓인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산패총 아래 야철지*는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과 일본까지 수출되었다고 전한다. 즉, 성산패총 아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철이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이다.

패총에서는 민무늬 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한나라 오수전(五銖錢)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중 가장 의미 있는 유물은 한나라 오수전이다. 한 무제(漢武帝, 기원 전 141~87 재위) 때 만들어진 오수전은 패총의 조성 시기 및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국제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성산패총 위에 조성된 삼국시대의 성곽은 5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서는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성산패총은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도시 창원의 역사적 근원이 되고 있다.


  • 야철지(冶鐵址): 철을 만들던 작업장

영문

Shell Mound in Seongsan, Changwon

A shell mound is made of clam, oyster, and other shellfish shells and waste disposed of by prehistoric people. Sometimes, dwelling sites and artifacts including earthenware and stone tools are found near shell mounds. These remains are important resources to understand the prehistoric period, including the natural environment and the culture and lives of people.

This shell mound in Seongsan was discovered in 1973 when, during the construction of an industrial complex, a layer of land was removed from a hillside revealing a pile of shellfish shells and some earthenware fragments. This shell mound, as well as an iron production site and remains of a fortress wall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were discovered during the excavations that began in 1974. These archaeological findings provide the earliest evidence of a settlement in the Changwon area and demonstrate a few important aspects of life from about 300 BCE until the end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iron processing site, in particular, is a valuable discovery that marks the beginning of the Iron Age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ccording to the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Sanguozhi) written in China in the 3rd century CE, the southern coastal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produced large amounts of iron which was exported to the Lelang and Daifang Commanderies in the northern part of the peninsula and to Japan. Thus, it is presumed that the iron produced at this site was exported overseas.

Other artifacts excavated on this site include undecorated pottery, semilunar stone knives, and spindle whorls. Also, coins minted in Han China during the reign of Emperor Wu (r. 141-87 BCE) were found on this site, providing evidence of trad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China at the time.

The fortress wall discovered above the shell mound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after the 5th century. Coins minted in Tang China (618-907) were also found around the wall.

영문 해설 내용

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버린 조개나 굴 등 패류의 껍데기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유적이다. 패총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살던 집터나 토기, 석기 등의 유물이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의 문화, 자연환경, 사람들의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다.

성산 패총은 1973년 이 일대에 공업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산을 깎는 과정에서 조개더미와 토기 조각들이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1974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패총, 철을 만들던 작업장, 패총 위에 쌓인 삼국시대의 성곽 등이 발견되었다.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공업도시 창원의 역사적 근원으로 여겨진다.

특히 철을 만들던 작업장은 한반도 남부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에 따르면,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대량의 철이 생산되어 낙랑, 대방, 일본까지 수출되었다고 한다. 즉 이곳의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철이 해외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이다.

패총에서는 민무늬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 때 만들어진 오수전(五銖錢)이라는 화폐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패총의 조성 시기 및 당시 한국과 중국 간의 국제 교류 관계를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패총 위에 조성된 성곽은 5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에서는 당나라 때의 화폐인 개원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창원_성산_패총 Object 창원_성산_패총
야철지 Place 야철지 철 소재를 녹이고 두드려 각종 철기를 만들었던 야철지가 2군데에서 발견됨
D00-0240-0000 Heritage (사적_제240호)창원_성산_패총 사적 제240호에 지정되어 있다.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창원_성산_패총 야철지 hasPart
창원_성산_패총 D00-0240-0000 isDesignate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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