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16일 (목) 11:21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창녕청련사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463...)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한자 昌寧 靑蓮寺 木造阿彌陀三尊如來坐像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계성화왕산로 288-102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3호
지정일 2008년 1월 10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구
웹사이트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은 청련사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 불상들이다. 석가모니후불도를 배경으로 가운데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으며 양쪽에 협시로 대세지보살상과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3구의 불상은 서로 높이를 달리하고 모셔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삼존상의 형식적 특징이다. 아미타여래의 옷 표현을 보면 가슴 아래로 내려 입은 내의(內衣) 는 연잎형으로 모양을 내었으며, 다리 사이에 넓은 2개의 옷주름을 양쪽으로 펼쳐놓았다. 이러한 특징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응혜(應惠)의 순천 동화사 대웅전 석가여래ㆍ약사여래좌상의 옷주름 표현과 유사하다. 관음보살상은 다리선을 따라 무릎쪽으로 흘러내리는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응혜의 담양 호국사 목조여래좌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릍 통해 보았을 때 청련사 목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응혜 계보의 조각승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삼존상은 조선시대인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련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으며,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3구의 불상은 모두 양 손을 무릎에 올리고 손가락을 맞댄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보관을 쓰고 있는 협시보살들이 본존불에 비해 작게 조성되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삼존상의 형식적 특징이다.

본존불의 옷 주름 표현을 볼 때 17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조각승 응혜를 잇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삼존상은 1842년에 대흥사에서 옮겨 왔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대흥사는 신라 때 원효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며, 폐사되었던 절을 1628년 청련암과 함께 중창해 1676년 본래의 터로 옮겼으나 100여년 만에 다시 폐허가 되고 청련암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 내의는 5개의 연잎형으로 모양을 내었으며, 양다리 사이는 넓은 2개의 옷주름이 양측으로 펼쳐진 모습이다. 이러한 특징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응혜應惠가 제작한 순천 동화사 대웅전 석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의 옷주름과 매우 비슷하다.
  • 이 아미타여래삼존상도 17세기 후반 대흥사가 중창되던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