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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검암리 하윤 묘비 및 석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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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검암리 하윤묘비 및 석인상
진주 검암리 하윤 묘비 및 석인상, 진주 관광, 진주시청.
대표명칭 진주 검암리 하윤묘비 및 석인상
한자 晉州 儉岩里 河潤墓碑 및 石人像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산45-6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7호
지정일 2012년 12월 27일
분류 유물/기타종교조각/유교조각/유교조각
수량/면적 묘비 1기,석상 2기(395㎡)
웹사이트 진주 검암리 하윤 묘비 및 석인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하윤 묘비 및 석인상은 연산군 시절에 호조좌랑과 형조좌랑을 지낸 하윤(1452~1500)의 무덤 앞에 세운 석물(石物)이다.

석물은 무덤 왼편에 세운 빗돌 1기와 양쪽에 서 있는 석인상 2기이다. 비문은 정광필(鄭光弼)이 지었는데 빗돌의 앞면에 ‘有明朝鮮國朝散大夫順天郡守晉陽河氏公諱潤之墓(유명조선국조산대부순천군수진양하씨공휘윤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비 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비 머리는 연잎 문양을 돋을새김하고 꼭대기에 연꽃 봉우리 모양을 만든 조선 초기의 빗돌 특징을 갖추고 있다.

양쪽 석인상은 투구 쓴 모습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옷 주름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손에 쥔 신물(身物)과 손 모양이 독특하여 조선시대 전기 무덤의 석물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 하윤(1452~1500): 호, 운수당(雲水堂), 1483년(성종14)에 과거에서 병과로 합격하고 연산군 시절에 호조좌랑, 형조좌랑을 역임하고 진주 정강서원(鼎岡書院)에 모셔졌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 문신 하윤(1452-1500)의 무덤 주변에 세워진 비석과 석인상 2기이다.

비석은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비는 1502년에 건립되었고 1851년에 다시 세웠으며, 비문은 정광필(1462-1538)이 지었다.

석인상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으며, 아래로 늘어진 소매를 포함해 옷의 주름을 진하게 표현하였다. 두 손에는 기물을 비스듬히 쥐고 있는데, 손가락 모양이 독특하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