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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 추담문집 목판 및 윤탁 구산문집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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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 추담문집목판 및 윤탁 구산문집 목판
윤선 추담문집 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윤선 추담문집목판 및 윤탁 구산문집 목판
한자 尹銑 秋潭文集 冊板 및 尹倬 龜山文集 冊板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신등가회로 671-48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지정일 1982년 8월 2일
분류 기록유산
수량/면적 86매
웹사이트 윤선 추담문집 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책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추담 윤선(秋潭 尹銑, 1559~1640)의 『추담문집』과 선조 때의 무신인 구산 윤탁(龜山 尹鐸, 1554~1593)의 『구산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새긴 목판이다.

윤선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하여 선조, 광해군 양대에 걸쳐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윤탁은 윤선의 사촌형으로 선조 18년(1585)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부정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많은 공을 세웠다.

『추담문집』은 윤선(尹銑)의 시와 상소문, 편지 등을 후손들이 모아 1910년에 간행한 문집으로 3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행적과 진주성 싸움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구산문집』은 윤탁(尹鐸)의 시와 문장을 후손들이 정리하여 1910년에 간행한 문집으로 2권 1책으로 구성되었다. 윤탁의 저술 외에도 1910년에 간행 당시 문인들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 윤선(1559-1640, 호 추담)과 무신 윤탁(1554-1593, 호 구산)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으로, 두 사람의 문집이 간행된 1910년에 제작되었다.

윤선은 1588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재위 1608-1623)을 수행했으며,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여러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다. 윤탁은 1585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다가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윤선의 문집 『추담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행적과 진주성 전투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윤탁의 문집 『구산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문집이 간행될 당시 활동했던 문인들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원래 『추담집』 책판 54매와 『구산집』 책판 30매, 계선판 2매를 더해 총 86매의 책판이 윤씨 가문의 재실로 쓰이고 있는 합천 구음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4호)의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3년 도난을 당해 총 71매의 책판이 사라졌고, 이후 남은 일부를 각 후손의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현재 두 문집 책판의 소장 위치가 다른 것으로 추정되므로 주소지 확인 필요함
  • 윤선추담문집목판(제210-1호)와 윤탁구산문집목판(제210-2호)으로 나누어 관리되고 있는데, 둘을 통합한 안내판(현재 형태)을 작성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필요할듯


참고자료

(도난문화재 정보 - 합천 함방리 구음재 목판 https://www.cha.go.kr/robbery/selectRobberyView.do?id=105&mn=NS_03_12-> 도난일자 1993년, 총 86판 중 71판(추담 46매, 구산 25매) 도난. /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69) 황강 16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경남신문, 2012.3.7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21029 -> 윤창근씨에 따르면 추담 및 구산선생의 문집책판이 구음재에 있었으나 도둑이 들어 가져가고 남은 일부 책판은 각각 후손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 윤선 추담문집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802100100 -> 추담선생문집책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0-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910년에 간행하였으며, 3권 2책으로 구성된 추담 윤선의 시문집이다. 크기는 대체로 가로 52㎝, 세로 21㎝, 폭 2.5㎝ 내외이다. 목판 수는 54매이며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계선(界線)이 있다. 내향2엽화문어미로 반엽은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구리가 있다. 서문은 윤휘동이 썼고 발문은 곽종석, 윤병갑이 식(識)을, 윤병문이 유묵발(遺墨跋)을 썼다. 문집은 윤선의 시와 상소문, 편지 등을 후손들이 모아 간행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윤선의 활동시기와 겹치는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행적과 진주성 전투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도 기록하고 있어서 임진왜란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목판은 윤순현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구음재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분실의 위험 때문에 개인 집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결락된 목판은 하나도 없지만, 먼지와 충해의 피해가 있다.
  • 윤탁구산문집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2100200&pageNo=1_1_1_1 -> 구산선생문집책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0-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1910년에 간행하였으며,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대체로 가로 52㎝, 세로 21㎝, 폭 2㎝ 내외이다. 목판 수는 30매이며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계선(界線)이 있다. 내향2엽화문어미로 반엽은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구리가 있다. 서문은 면우 곽종석이 썼고 발문은 윤영구, 윤영성, 최정우, 윤병모가 썼다. 문집 내용에는 저자의 저술 외에도 1910년 간행 당시 문인들의 글도 함께 실려 있다. 행장(行狀)은 후손 윤선이 지었고, 묘지명(墓誌銘)은 박경가, 묘표(墓表)는 이상희, 묘갈명(墓碣銘)은 허부가 지었다. 목판은 윤한덕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구음재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분실의 위험 때문에 개인 집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목판은 결락된 것이 하나도 없지만, 먼지와 충해의 피해가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