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산동 고분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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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고분군은 2세기부터 7세기까지에 걸쳐 만들어진 삼한과 신라의 무덤이다. | ||
+ | 1991년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에서 발견되어 곧바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삼한시대의 널무덤, 덧널무덤과 신라시대의 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 수백여 기가 확인되었다. 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만든 덧널을 설치한 뒤 그 내부에 주검을 묻은 형태이고, 돌무지덧널무덤은 덧널 위나 주위를 돌로 덮은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이다. 중산동 고분군은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며, 특히 돌무지덧널무덤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 받는다. | ||
+ |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오리모양토기와 같이 정교하게 제작된 와질토기를 비롯하여 둥근머리큰칼, 갑옷과 같은 무기, 마구 등이 있다. | ||
− | + | * 유물은 모두 복수형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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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5일 (화) 19:56 판
중산동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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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중산동고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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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중산洞古墳群 |
주소 |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 616-1번지 일원 |
지정번호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9호 |
지정일 | 1997년 10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15,615㎡ |
웹사이트 | 중산동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중산동 고분군은 2세기부터 7세기에 만들어졌다.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드러나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삼한 시대의 널무덤, 덧널무덤, 삼국시대의 덧널무덤과 돌무지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수백여 기의 무덤이 드러났다.
무덤 내부에서는 오리모양토기와 같이 정교하게 제작된 와질토기*를 비롯하여 둥근머리큰칼, 갑옷과 같은 무기, 마구 등이 나왔다.
덧널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판 다음 덧널**을 설치한 뒤 그 내부에 주검을 묻은 형태이고, 돌무지덧널무덤은 덧널 위나 주위를 돌로 덮은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이다.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는 중산동 고분군은 특히 돌무지덧널무덤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 받는다.
- 와질토기: 바닥이 수평을 이루는 가마의 경우, 올릴 수 있는 열의 온도는 보통 850∼950℃이며, 이 온도에서 굽힌 토기가 와질토기이다.
- 덧널: 널빤지를 넣기 위해 따로 짜 맞춘 매장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곽.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고분군은 2세기부터 7세기까지에 걸쳐 만들어진 삼한과 신라의 무덤이다.
1991년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에서 발견되어 곧바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삼한시대의 널무덤, 덧널무덤과 신라시대의 덧널무덤, 돌무지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 수백여 기가 확인되었다. 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만든 덧널을 설치한 뒤 그 내부에 주검을 묻은 형태이고, 돌무지덧널무덤은 덧널 위나 주위를 돌로 덮은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이다. 중산동 고분군은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며, 특히 돌무지덧널무덤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 받는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오리모양토기와 같이 정교하게 제작된 와질토기를 비롯하여 둥근머리큰칼, 갑옷과 같은 무기, 마구 등이 있다.
- 유물은 모두 복수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