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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는 전쟁 또는 군사훈련 시에 대장이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원래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수어장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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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장대는 1686년 남한산성의 외성인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지어졌다.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어졌으며,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을 하던 곳이다. 본성 내부에 지어졌던 4개의 장대는 누각과 함께 지어졌으나, 외동장대는 누각이 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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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남한산성의 경관 요소를 군사, 통치, 민속으로 구분하였는데, 외동장대터는 그중 군사경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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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7일 (금) 13:55 판


외동장대터 外東將臺址
Goto.png 종합안내판: 남한산성



해설문

국문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어진 외동장대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후영장(죽산부사)이 머물며 지휘하던 곳이다. 숙종 12년(1686)에 유수 윤지선이 수어청 군사를 동원하여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건립하여,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옛 지도를 보면 본성 내부의 장대와 달리 외동장대는 누각에 관한 기록이나 표시가 없어 처음부터 누각이 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외동장대터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 경관(장대)에 해당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대는 전쟁 또는 군사훈련 시에 대장이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남한산성에는 원래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수어장대만 남아있다.

외동장대는 1686년 남한산성의 외성인 봉암성을 축성할 때 함께 지어졌다.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지어졌으며,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을 하던 곳이다. 본성 내부에 지어졌던 4개의 장대는 누각과 함께 지어졌으나, 외동장대는 누각이 없이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남한산성의 경관 요소를 군사, 통치, 민속으로 구분하였는데, 외동장대터는 그중 군사경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