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만취당 고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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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취당 고택은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732-1800)이 18세기 중반에 지었다. ‘만취당’이라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초목의 푸른빛의 집”이라는 뜻으로 변함없는 도의를 상징하며, 이 집의 사랑채 이름이기도 하다. | ||
+ | 만취당은 크게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 구역,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 구역, 제사 영역인 사당 구역 등 3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일반적인 모습이며,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구분하고 제사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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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과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진입하는 중문이 있고, 중문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중사랑채와 큰사랑채가 있다. 큰사랑채의 맨 오른쪽 방은 제사를 지낼 때 여성 제관들이 사용하는 방이다.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에 여성의 공간이 마련된 독특한 사례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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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왼쪽의 안방 앞에는 부엌과 고방이 있고, 오른쪽 방 앞에는 아랫방과 마루방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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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채 오른쪽에 있는 사당은 별도의 담장을 둘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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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문채 왼쪽의 새사랑채, 사당 뒤의 보본재(제청), 보본재 뒤의 별묘는 모두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 ||
=='''갤러리'''== | =='''갤러리'''== |
2022년 8월 27일 (토) 00:33 판
영천 만취당 고택 Manchwidang House, Yeong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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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천 만취당 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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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anchwidang House, Yeongcheon |
한자 | 永川 晩翠堂 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 (오계리) |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제175호 |
지정일 | 1984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6필지/ 지정구역 2,877㎡, 보호구역 922㎡ |
웹사이트 | 영천 만취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영천 만취당 고택은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의 집으로, ‘만취당’은 이 집의 사랑채 이름이다.
안채는 ㄷ자 모양이고 건물 가운데는 네 칸이다. 건물의 오른쪽부터 두 칸은 안방이고 큰 마루와 작은방이 한 칸씩이다. 안방은 부엌과 고방**으로 이어지고, 작은방은 아랫방과 마루방으로 이어진다.
사랑채는 안채와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사랑 마당에서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을 사이에 두고 큰사랑채와 중사랑채로 나뉜다. 큰사랑채는 왼쪽부터 두 칸이 사랑방이고 큰 마루와 제방***이 한 칸씩인데, 여성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제방을 사랑채에 마련한 예는 매우 드물다. 중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중사랑방이 있고 왼쪽에는 마루가 있다.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으며, 그 뒤쪽으로 별묘****와 보본재(報本齋)가 있다. 대문채 옆에는 광명헌(光明軒)이라고 하는 새사랑채가 있는데, 광명헌, 별묘, 보본재 등은 모두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당시의 건축 양식과 주생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각 도의 육군을 지휘책임을 맡은 종이품의 무관 벼슬
- 고방(庫房): 살림살이를 넣어 두는 방.
- 제방(祭房): 제사를 지낼 때 여성 제관들이 사용하는 방.
- 별묘(別廟): 한집안의 사당에서 받들 수 없는 신주를 모시기 위하여 따로 둔 사당.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만취당 고택은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732-1800)이 18세기 중반에 지었다. ‘만취당’이라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초목의 푸른빛의 집”이라는 뜻으로 변함없는 도의를 상징하며, 이 집의 사랑채 이름이기도 하다.
만취당은 크게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 구역,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 구역, 제사 영역인 사당 구역 등 3개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일반적인 모습이며,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구분하고 제사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과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진입하는 중문이 있고, 중문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중사랑채와 큰사랑채가 있다. 큰사랑채의 맨 오른쪽 방은 제사를 지낼 때 여성 제관들이 사용하는 방이다.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에 여성의 공간이 마련된 독특한 사례이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왼쪽의 안방 앞에는 부엌과 고방이 있고, 오른쪽 방 앞에는 아랫방과 마루방이 있다.
안채 오른쪽에 있는 사당은 별도의 담장을 둘렀다.
대문채 왼쪽의 새사랑채, 사당 뒤의 보본재(제청), 보본재 뒤의 별묘는 모두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갤러리
영천 만취당 고택 배치도[1]
참고자료
- 『한국의 전통 가옥 - 영천 만취당 기록화보고서』, 문화재청, 2007.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1549&bbsId=BBSMSTR_1021&mn=NS_03_08_01
주석
- ↑ 『한국의 전통 가옥 - 영천 만취당 기록화보고서』, 문화재청, 2007, 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