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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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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4월 28일 (일) 09:24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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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한자 寧越 正宗大王 胎室 및 胎室碑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 133
지정번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지정일 1995년 9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수량/면적 일괄
웹사이트 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으로,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태를 모셨던 곳이다. 태실의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비가 있다.

현재 태실은 두 기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받침돌 위에 둥근 몸돌을 올리고 팔각형의 지붕돌을 얹은 다음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다른 하나는 원통형 돌함 위에 반원형의 뚜껑돌을 얹었다.

태실비는 거북받침 위에 한 몸으로 된 비신(비석 몸체)과 머릿돌을 올렸다. 거북받침의 등에는 오각형 무늬를 새겼고, 머릿돌에는 양옆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 무늬를 채웠다. 비의 앞면에는 ‘정종대왕태실’이라는 이름을, 뒷면에는 만든 날짜를 새겼다.

정조가 태어난 다음 해인 영조 29년(1753)에 태실을 만들고, 순조 즉위년(1800)에 비를 세웠다. 1929년 조선 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창경원으로 옮길 때 이 태실의 태항아리도 꺼내 갔다. 그 뒤 광산개발로 흩어졌던 태실과 비는 1967년 KBS 영월방송국 안으로 옮겼다가 1999년에 지금의 자리에 원래대로 가져다 놓았다.


  •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본래는 정종이었으나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정조로 바뀌었다.

영문

Placenta Chamber and Stele of King Jeongjong, Yeongwol

A placenta chamber was built at an auspicious site to enshrine the placenta and umbilical cord of a royal baby. This custom was practiced to wish for the baby’s health and longevity. If the child later became king, various stone sculptures were added, such as a stele.

This placenta chamber and stele belong to King Jeongjong (1752-1800, r. 1776-1800), the 22nd rul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chamber was built in 1753, while the stele was added in 1800. In 1929,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Japanese authorities relocated the placenta jar and left the chamber and stele abandoned. In 1967, the chamber and stele were moved to the grounds of the KBS Yeongwol Broadcast Station due to the development of a nearby mine. They were returned to their original location in 1999.

The placenta chamber, which is surrounded by stone balustrades, consists of a base, a round body stone, and an octagonal roof stone. The stele consists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The pedestal is decorated with tortoise-shell designs, while the capstone features a carved image of two dragons surrounded by clouds. The front of the body stone is inscribed with its name, while the back is inscribed with a record about the placenta chamber's construction.

  • 긴 것 같아서 내용을 약간 줄였어요.

영문 해설 내용

태실은 왕실에서 자녀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한 태항아리를 모시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태를 잘 보존하면 자녀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 왕실에서는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택해 태를 봉안하였으며, 태실 앞에는 이를 기념하는 태실비를 세웠다. 태실의 주인이 왕이 되면 태실 주변의 석물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의 태실이고, 태실 앞에는 태실비가 있다. 1753년 처음 조성하고 1800년에 태실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파괴하고, 태항아리를 고양 서삼릉 경내로 옮겨 안장하였다. 정조의 태항아리도 1929년에 옮겨졌고, 그뒤 광산개발에 따라 이곳에 있던 태실과 비는 1967년 KBS 영월방송국으로 옮겨졌다. 1999년 태실과 태실비가 지금의 위치로 복원되었다.

태실은 받침돌, 둥근 몸돌, 팔각형의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태실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거북 모양 받침돌의 등에는 오각형 무늬를 새겼고, 머릿돌에는 양옆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 무늬를 채웠다. 비의 앞면에는 태실비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753년 태실이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