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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조영걸 가옥"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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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英陽 趙永傑 家屋
 
|한자=英陽 趙永傑 家屋
|주소=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1길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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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1길 4-24 (주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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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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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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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옥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다. 한양조씨 호은공파의 집성촌인 주곡리 주실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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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옥은 원래 봉화에 처음 지어졌다. 학자 조진도(1724-1788, 호: 마암)가 1767년 무렵 봉화에 정착하면서 지었고,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이라 이름을 붙였다. 조진도의 6세손인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주실마을의 한양조씨 일가 사람들이 독립운동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그때 조현기는 이 집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였다. 집을 매입한 권희연은 사랑채를 키우고 고방채와 대문채를 짓는 등 가옥의 규모를 크게 확장하였다. 2006년 한양조씨 일족인 조영걸이 매입하였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고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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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옥을 구성하는 건물들 중 조선 후기 건물인 정침(본채)만 2023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맞배지붕 기와집인 정침은 ‘⊓’ 자형인 안채와 ‘一’ 자형인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口’ 자형을 이루고 있다. 20세기 초 소유자가 바뀌면서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시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주실마을의 역사와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24년 5월 4일 (토) 11:15 판


영양 조영걸 가옥
대표명칭 영양 조영걸 가옥
한자 英陽 趙永傑 家屋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1길 4-24 (주곡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2023년 10월 19일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영양 조영걸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영걸가옥은 한양 조씨 호은공파의 집성촌인 주곡리 주실 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마암 조진도가 1767년경 봉화에 정착하였을 때 지은 집으로, 18세기 말 조진도의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조시복의 아들 조언강이 정침*을 고쳐 지었다. 조진도의 6세손인 조현기가 1901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3월 마을의 일가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면서 일가의 외손인 권희연에게 팔았다. 권희연은 살림이 늘어나면서 당시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하여 정침을 고치고 사랑채를 키웠으며 고방채, 대문채 등의 부속채를 세웠다. 2006년 지금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옮겨졌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고쳐 지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5.5칸으로 평면이 ‘ㅁ’ 자형이며,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정침은 ‘⊓’ 자형인 안채와 ‘一’ 자형인 사랑채가 서로 다른 주열**+로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안채는 좌우에 붙어 있는 곁채를 포함하여 정면 4칸, 측면 4칸이며,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5칸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폐쇄적인 뜰집**** 형식을 갖춘 상류 주택이다. 근대에 들어 소유자가 바뀌면서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시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주실 마을의 역사와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 정침(正寢): 집 안에서 중심이 되는 집채 또는 방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주열(柱列): 기둥의 열
  • 뜰집: 안마당을 중심으로 4방향이 모두 연결된 집채로 둘러싸인 ‘口’ 자형의 집을 경북 지역에서 이르는 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가옥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다. 한양조씨 호은공파의 집성촌인 주곡리 주실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가옥은 원래 봉화에 처음 지어졌다. 학자 조진도(1724-1788, 호: 마암)가 1767년 무렵 봉화에 정착하면서 지었고,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이라 이름을 붙였다. 조진도의 6세손인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주실마을의 한양조씨 일가 사람들이 독립운동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그때 조현기는 이 집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였다. 집을 매입한 권희연은 사랑채를 키우고 고방채와 대문채를 짓는 등 가옥의 규모를 크게 확장하였다. 2006년 한양조씨 일족인 조영걸이 매입하였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고쳐 지었다.

이 가옥을 구성하는 건물들 중 조선 후기 건물인 정침(본채)만 2023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맞배지붕 기와집인 정침은 ‘⊓’ 자형인 안채와 ‘一’ 자형인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口’ 자형을 이루고 있다. 20세기 초 소유자가 바뀌면서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시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주실마을의 역사와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