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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dapsa.kr/blog/?p=28929 영월 엄흥도 정려각, 단종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 내려진 정려], Culture & History Traveling, 2016.10.25.
 
|사진출처=[http://www.dapsa.kr/blog/?p=28929 영월 엄흥도 정려각, 단종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 내려진 정려], Culture & History Traveling,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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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영월 장릉

2024년 2월 21일 (수) 14:30 판


엄흥도 정려각 嚴興道 旌閭閣
Goto.png 종합안내판: 영월 장릉



해설문

국문

이 비각은 영월 호장 엄흥도(嚴興道)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이다.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엄흥도가 찾아가 통곡을 하고, 관을 마련하여 장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되었고,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 증직: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종이품 벼슬아치의 부친, 조부, 증조부나 충신, 효자 및 학행이 높은 사람에게 내려 주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