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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성일(1538-1593)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 ||
+ | 김성일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 사람인 이황(1501-1570)의 수제자로, 예학에 특히 밝았으며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지역을 돌며 의병 활동을 독려하였고,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였다. 같은 해 경상우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진주성에서 항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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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재사는 17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고 있고, 아래채에는 위쪽에 누마루가 있고 아래에 외양간과 광이 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사가 끝난 후에 이 누마루에서 제사에 쓰인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 ||
2020년 3월 10일 (화) 14:59 판
안동 의성김씨 서지재사 Seojijaesa Ritual House of the Uiseong Kim Clan,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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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의성김씨 서지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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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eojijaesa Ritual House of the Uiseong Kim Clan, Andong |
한자 | 安東 義城金氏 西枝齋舍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가수내길 8-12 (서지리) |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제182호 |
지정일 | 1984년 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필지/1,650㎡ |
웹사이트 | 안동 의성김씨 서지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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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서지재사는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의 묘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위치는 학봉의 묘소가 있는 동쪽 산기슭의 동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이며, 170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학봉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부제학을 지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경상도 초유사**로 있으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진주성을 지켰다.
재사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이다. 2층 건물의 아래에는 광과 대문간, 외양간 등이 있다. 위에는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가 있는데, 제사를 지낸 후에 음복***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경사지를 이용해 앞면을 2층으로 만든 것이다.
- 묘제: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
- 초유사: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아 하던 임시 벼슬.
- 음복: 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
영문
Seojijaesa Ritual House of the Uiseong Kim Clan, Andong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성일(1538-1593)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김성일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 사람인 이황(1501-1570)의 수제자로, 예학에 특히 밝았으며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지역을 돌며 의병 활동을 독려하였고,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였다. 같은 해 경상우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진주성에서 항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이 재사는 17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고 있고, 아래채에는 위쪽에 누마루가 있고 아래에 외양간과 광이 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사가 끝난 후에 이 누마루에서 제사에 쓰인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