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9번째 줄: 29번째 줄:
  
 
====수정 국문====
 
====수정 국문====
 +
근재재사는 근재 이전(近齋 李筌, 1486~1531)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손자인 이호(李瑚)가 조선 선조 24년(1591)에 지었다. 이전은 풍산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
근재재사는 대문채와 본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는데, 이는 경상북도 지역 재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대문채에는 왼쪽에서부터 대문, 마굿간, 주방이 있고, 본채는 왼쪽의 앞채와 오른쪽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왼쪽 온돌방 앞에 부엌과 찬방을 두어 앞채와 연결하였다. 앞채에는 넓은 누마루가 있으며 돌로 쌓은 계단을 두어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앞채 현판에 쓰인 ‘모선루(慕先樓)’는 ‘선조를 그리워하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이전의 인품과 지조를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문===
 
===영문===
40번째 줄: 40번째 줄:
  
 
The main quarters of this house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wo rooms, a kitchen, and a closet. The square layout of this ritual house is very common in the Gyeongsangbuk-do area.
 
The main quarters of this house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wo rooms, a kitchen, and a closet. The square layout of this ritual house is very common in the Gyeongsangbuk-do area.
 +
 +
=='''참고자료'''==
 +
*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483701800000
 +
*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679
 +
*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ks.ai/GC02400786
 +
*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2021년 국가민속문화재(건조물) 정기조사 3』, 문화재청, 2021, 497~514쪽.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82089&bbsId=BBSMSTR_1021&mn=NS_03_08_01
 +
  
  

2023년 5월 15일 (월) 11:08 판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Geunjaejaesa Ritual House of the Yean Yi Clan, Andong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2021년 국가민속문화재(건조물) 정기조사 3』, 문화재청, 2021, 506쪽.
대표명칭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영문명칭 Geunjaejaesa Ritual House of the Yean Yi Clan, Andong
한자 安東 禮安李氏 近齋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평지길 422-4 (만운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80호
지정일 1984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필지/2,450㎡
웹사이트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근재(近齋) 이전(李荃, 1486~1529)의 덕을 기리는 재실로 조선 선조(宣祖) 24년(1591)에 건립되었다. 근재의 인품과 깨끗한 지조를 기려서 재사에 모선루(慕先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전은 자(字)가 무선(茂先)으로 조선 성종(成宗) 17년에 태어나서 조선 중종(中宗) 24년에 타계하였다. 공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고향에 내려와 풍산현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口’자 평면을 가진 재실로 기둥과 보아지 등에서 오래된 수법이 보인다.

안채는 정면 2칸의 크기로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우측에 사랑방이 있고 안방 앞마당 쪽으로 부엌 2칸과 찬방 1칸을 달았다.

수정 국문

근재재사는 근재 이전(近齋 李筌, 1486~1531)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손자인 이호(李瑚)가 조선 선조 24년(1591)에 지었다. 이전은 풍산에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근재재사는 대문채와 본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는데, 이는 경상북도 지역 재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대문채에는 왼쪽에서부터 대문, 마굿간, 주방이 있고, 본채는 왼쪽의 앞채와 오른쪽의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왼쪽 온돌방 앞에 부엌과 찬방을 두어 앞채와 연결하였다. 앞채에는 넓은 누마루가 있으며 돌로 쌓은 계단을 두어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앞채 현판에 쓰인 ‘모선루(慕先樓)’는 ‘선조를 그리워하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이전의 인품과 지조를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문

2017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for Yi Jeon (1486-1529). It is named after Yi’s pen name, Geunjae. It was first built by his grandson in 1591 and was reconstructed in 1947.

Yi Jeon retired to his hometown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19, and devoted his remaining days to local education.

The main quarters of this house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wo rooms, a kitchen, and a closet. The square layout of this ritual house is very common in the Gyeongsangbuk-do area.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