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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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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4월 30일 (일) 20:5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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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Champandaek House in Oeam Village, Asan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영문명칭 Champandaek House in Oeam Village, Asan
한자 牙山 外岩마을 參判宅
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42-15 (외암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95호
지정일 1984년 12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8필지/7,171㎡
웹사이트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아산 외암리 참판댁은 구한말 규장각 직학사(直學士)와 궁내부 특진관, 시종원 부경 등을 지낸 퇴호(退湖) 이정렬(李貞烈, 1868~1950)이 고종에게 받은 집이다. 이정렬의 양부 이상규가 참판에 해당하는 내부협판에 추증*되어 참판댁으로 불린다.

참판댁은 외암마을 동쪽에 남서향으로 자리를 잡은 목조 기와집 두 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따로 지어진 집이다. 큰 집은 10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5칸의 ‘ㅡ’자 모양 사랑채, 8칸의 ‘ㅡ’자 모양 문간채로 되어 있고, 작은 집은 6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7칸의 ‘ㄱ’자 모양 사랑채로 되어 있다.

큰 집은 돌담장으로 집안의 공간을 구분하는 한편, 대문 앞에 돌담을 쌓아 아늑함을 주고, 작은 집은 사랑방 앞 대청 양쪽에 분합문(分閤門)**이 있는 고방(庫房)을 두어 과방(果房)***이나 툇마루 등 여러 용도로 이용하였다.

평면 구성은 대청이 안방 구들에서 꺾어진 중부 양식이지만 작은 집 사랑채는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된 남부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추증: 나라에 공이 있는 벼슬아치나 그의 선조에게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 분합문(分閤門): 대청 앞에 다는 네 쪽 문. 여름에는 둘씩 접어들어 올려 기둥만 남고 모두 트인 공간이 된다.
  • 과방(果房): 큰일을 치를 때 음식을 차려 놓고 내가는 곳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외암마을 동쪽에 남서향으로 자리한 참판댁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조선 왕실의 업무를 총괄하던 궁내부와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등에서 관직을 지낸 이정렬(1868-1950)이 고종(재위 1863-1907)으로부터 하사받은 집이다. 이정렬의 양부인 이상규가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1851-1895)와 이종사촌이었기 때문에, 고종은 이정렬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참판댁이라는 이름은 이상규가 추증 받은 관직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 말 중앙 관서의 부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참판댁은

참판댁은 외암마을 동쪽에 남서향으로 자리를 잡은 목조 기와집 두 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따로 지어진 집이다. 큰 집은 10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5칸의 ‘ㅡ’자 모양 사랑채, 8칸의 ‘ㅡ’자 모양 문간채로 되어 있고, 작은 집은 6칸의 ‘ㄱ’자 모양 안채와 7칸의 ‘ㄱ’자 모양 사랑채로 되어 있다.

큰 집은 돌담장으로 집안의 공간을 구분하는 한편, 대문 앞에 돌담을 쌓아 아늑함을 주고, 작은 집은 사랑방 앞 대청 양쪽에 분합문(分閤門)**이 있는 고방(庫房)을 두어 과방(果房)***이나 툇마루 등 여러 용도로 이용하였다.

평면 구성은 대청이 안방 구들에서 꺾어진 중부 양식이지만 작은 집 사랑채는 대청이 한쪽으로 배치된 남부 양식을 따르고 있다.

추증: 나라에 공이 있는 벼슬아치나 그의 선조에게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분합문(分閤門): 대청 앞에 다는 네 쪽 문. 여름에는 둘씩 접어들어 올려 기둥만 남고 모두 트인 공간이 된다. 과방(果房): 큰일을 치를 때 음식을 차려 놓고 내가는 곳


갤러리

  1. "아산 외암리 참판댁(큰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1쪽.
  2. "아산 외암리 참판댁(작은댁)", 『우리 옛 집 - 강원, 경기, 서울, 전라, 제주, 충청』, 도서출판 집, 2016, 3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