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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북수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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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7일 (월) 06:50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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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북수리 유적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아산북수리유적.jpg
대표명칭 아산 북수리 유적
영문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해설문

국문

교통ㆍ교역의 중심지 - 아산 북수리유적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아산 북수리유적은 월천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유적은 곡교천과 그 지류인 회룡천 서쪽에 형성된 충적지와 배후습지, 그리고 남쪽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한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부터 청동기~조선시대의 생활ㆍ생산유구, 마한~조선시대의 무덤유구 등 다종다양한 유구가 분포하는 복합유적이다.

충적지는 곡교천 등 주변 하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최근까지 논으로 이용되었다. 북수리유적에서 회룡천을 경계로 마주한 갈매리유적(현재 배방자이 1차 아파트)에서도 동일한 시대와 성격의 대규모 마을유적이 확인되어 고대부터 중심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북수리ㆍ갈매리유적 등 대규모 마을의 존재는 이곳이 아산만에서 연결되는 해상루트의 거점지역으로서 활발하게 선진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아산 북수리유적은 고대 곡교천 중상류의 거점지역에 대한 시간적ㆍ공간적인 상관관계와 교역망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발굴조사를 통해 살펴보는 북수리유적의 공간배치

북수리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호남문화재연구원(Ⅰ-③구역),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Ⅰ구역), 중부고고학연구소(Ⅱ-②구역)등 3개 기관이 분담하여 조사하였다.

지형적으로 충적지와 배후습지에 해당하는 북쪽은 동아세아ㆍ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삼국시대 주구부건물지(周溝附建物址)[1],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 수혈건물지(竪穴建物址), 구덩이(竪穴), 제련로(製鍊爐), 집수정(集水井), 도랑(溝), 경작유구 및 조선시대 경작유구, 수레바퀴흔 등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 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 대형독모양토기(大甕), 시루 등 다양한 생활용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송풍관(送風管), 철광석, 슬래그(slag) 등이 출토된 제련로는 단 1기만 조사되었지만, 광석에서 금속원료를 추출하는 생산시설로서 유통과 교역 등 유적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남쪽의 구릉지는 중부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구석기시대의 유물포함층, 청동기시대 수혈건물지, 불 맞은 흔적(燒成遺構), 마한~조선시대 무덤, 시대미상의 함정유구(陷穽遺構), 불 맞은 흔적, 구덩이 등이 조사되었다. 이 중 마한~백제시대 무덤은 도랑을 파서 돌린 구덩무덤(周溝土壙墓), 구덩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으로 구분된다. 구덩무덤은 널이나 덧널이 없는 형태의 무덤(土葬墓)ㆍ널무덤(木棺墓ㆍ木槨形木棺墓)ㆍ덧널무덤(木槨墓) 등 시신을 묻는 매장주체부의 형태와 구조에 따라 세분된다. 이를 통해 백제 한성기 지방세력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아산 북수리유적의 북쪽 충적지는 삶의 터전이 된 생활ㆍ생산공간으로 이용된 반면에 남쪽의 구릉지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무덤공간으로 조성되어 당시 사람들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공간구성을 엿볼 수 있었다.

출토된 유물을 통해 생활ㆍ생산유적은 4세기, 무덤유적은 4세기 전반~5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자료들은 4~5세기 백제 변방의 대규모 마을구조와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의 성장 및 확장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해 준다.


  1. 방형 또는 원형의 도랑 내부에 하나의 독립적인 공간이 배치된 주거용 건물로 내부 공간에는 4개의 기둥자리와 다수의 보조기둥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생활면을 기준으로 수혈식(=지하식)ㆍ지면식ㆍ고상식이 모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주구부건물지.jpg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The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consists of structural remains dating to the Paleolithic period, various artifacts and tools from the Bronze Age (1500-300 BC) to the Joseon period (1392-1910), as well as tombs from the Mahan period (1st century BC-5th century CE) to the Joseon period. The site is distributed over two areas. To the north, the site stretches over an alluvial plain and backswamp created by the deposition of sediment during the flooding of Gokgyocheon Stream. To the south, the site occupies a moderately sloped terrain.

On the alluvial plain were the remains of dwellings, a smelting hearth, a water reservoir, and farmland, which shows that this area was used for domestic life and the production of food and goods. The artifacts excavated here include everyday vessels such as earthenware without designs, bowls, jars, and steamers. Inside the smelting hearth, ducts, iron ore, and slag were discovered, showing that it was a facility used for extracting metal from ore.

The sloped area to the south was reserved primarily for the burial of the dead. Burial sites dating to the 4th-5th centuries included pit tombs, jar coffin tombs, wooden coffin tombs, and wooden chamber tombs. These tombs belonged to the Mahan confederacy and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This site provides valuable information about the local burial practices of the time.

The distribution of the archaeological remains at this site demonstrates how well-calculated and systematic the ancient people were in their approach to space planning. Across Gokgyocheon Stream, there is another ancient village site, suggesting this area along Gokgyocheon Stream has long been a hub for sea trading routes and a place of active cultural exchange.

  • 문무의 형용사는 토기에만 해당 되는지, 바리, 항아리, 시루 등에도 해당 되는지... 바리, 항아리 등은 토기에 속하지 않아요? 뭐가 달라요?
  • 건너편에 있는 마을은 정확히 어느 시대곳인지 몰라서 일단 ancient으로 했어요.

영문 해설 내용

  • 안내판이 총 3개 설치될 예정(국문 2개, 영문 1개). 영문 안내판은 두 국문 안내판의 내용을 적절히 섞어서 포함하되, 분량은 국문 안내판 1개와 비슷하도록.

아산 북수리 유적은 곡교천 등 주변 하천이 범람하면서 형성된 북쪽의 충적지와 배후습지, 그리고 남쪽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지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생활유구 및 생산유구,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 등 다양한 종류의 유구가 포함된 복합유적이다.

북수리유적 맞은편에도 동일한 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일대가 아산만에서 연결되는 해상 루트의 거점 지역으로서 오래전부터 선진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북수리 유적의 유구 분포와 출토 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공간 구성을 엿볼 수 있다.

북쪽 충적지에서는 주거용 건물지, 제련로, 집수정, 경작유구 등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 및 생산 관련 공간들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무문토기, 바리, 항아리, 시루 등 일상생활 용기들이 있으며, 제련로에서는 송풍관, 철광석, 슬래그 등이 발견되어 광석에서 금속원료를 추출하는 생산시설이었음이 밝혀졌다.

반면 남쪽 구릉지에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무덤공간이 주로 조성되었다. 특히 4세기 전반~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마한과 백제의 무덤들은 시신을 묻는 형태에 따라 구덩무덤,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당시 지방세력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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