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아산 북수리 유적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6월 5일 (토) 05:41 판 (영문 해설 내용)

이동: 둘러보기, 검색


아산 북수리 유적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아산북수리유적.jpg
대표명칭 아산 북수리 유적
영문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해설문

국문

교통ㆍ교역의 중심지 - 아산 북수리유적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아산 북수리유적은 월천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유적은 곡교천과 그 지류인 회룡천 서쪽에 형성된 충적지와 배후습지, 그리고 남쪽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한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부터 청동기~조선시대의 생활ㆍ생산유구, 마한~조선시대의 무덤유구 등 다종다양한 유구가 분포하는 복합유적이다.

충적지는 곡교천 등 주변 하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최근까지 논으로 이용되었다. 북수리유적에서 회룡천을 경계로 마주한 갈매리유적(현재 배방자이 1차 아파트)에서도 동일한 시대와 성격의 대규모 마을유적이 확인되어 고대부터 중심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북수리ㆍ갈매리유적 등 대규모 마을의 존재는 이곳이 아산만에서 연결되는 해상루트의 거점지역으로서 활발하게 선진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아산 북수리유적은 고대 곡교천 중상류의 거점지역에 대한 시간적ㆍ공간적인 상관관계와 교역망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발굴조사를 통해 살펴보는 북수리유적의 공간배치

북수리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호남문화재연구원(Ⅰ-③구역),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Ⅰ구역), 중부고고학연구소(Ⅱ-②구역)등 3개 기관이 분담하여 조사하였다.

지형적으로 충적지와 배후습지에 해당하는 북쪽은 동아세아ㆍ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삼국시대 주구부건물지(周溝附建物址)[1],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 수혈건물지(竪穴建物址), 구덩이(竪穴), 제련로(製鍊爐), 집수정(集水井), 도랑(溝), 경작유구 및 조선시대 경작유구, 수레바퀴흔 등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 바리모양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壺形土器), 대형독모양토기(大甕), 시루 등 다양한 생활용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송풍관(送風管), 철광석, 슬래그(slag) 등이 출토된 제련로는 단 1기만 조사되었지만, 광석에서 금속원료를 추출하는 생산시설로서 유통과 교역 등 유적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남쪽의 구릉지는 중부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구석기시대의 유물포함층, 청동기시대 수혈건물지, 불 맞은 흔적(燒成遺構), 마한~조선시대 무덤, 시대미상의 함정유구(陷穽遺構), 불 맞은 흔적, 구덩이 등이 조사되었다. 이 중 마한~백제시대 무덤은 도랑을 파서 돌린 구덩무덤(周溝土壙墓), 구덩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으로 구분된다. 구덩무덤은 널이나 덧널이 없는 형태의 무덤(土葬墓)ㆍ널무덤(木棺墓ㆍ木槨形木棺墓)ㆍ덧널무덤(木槨墓) 등 시신을 묻는 매장주체부의 형태와 구조에 따라 세분된다. 이를 통해 백제 한성기 지방세력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아산 북수리유적의 북쪽 충적지는 삶의 터전이 된 생활ㆍ생산공간으로 이용된 반면에 남쪽의 구릉지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무덤공간으로 조성되어 당시 사람들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공간구성을 엿볼 수 있었다.

출토된 유물을 통해 생활ㆍ생산유적은 4세기, 무덤유적은 4세기 전반~5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자료들은 4~5세기 백제 변방의 대규모 마을구조와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의 성장 및 확장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해 준다.


  1. 방형 또는 원형의 도랑 내부에 하나의 독립적인 공간이 배치된 주거용 건물로 내부 공간에는 4개의 기둥자리와 다수의 보조기둥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생활면을 기준으로 수혈식(=지하식)ㆍ지면식ㆍ고상식이 모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주구부건물지.jpg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Buksu-ri, Asan

영문 해설 내용

  • 안내판이 총 3개 설치될 예정(국문 2개, 영문 1개). 영문 안내판은 두 국문 안내판의 내용을 적절히 섞어서 포함하되, 분량은 국문 안내판 1개와 비슷하도록.

아산 북수리 유적은 곡교천 등 주변 하천이 범람하면서 형성된 북쪽의 충적지와 배후습지, 그리고 남쪽의 낮고 완만한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지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생활유구 및 생산유구, 마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 등 다양한 종류의 유구가 포함된 복합유적이다.

북수리유적 맞은편에도 동일한 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일대가 아산만에서 연결되는 해상 루트의 거점 지역으로서 오래전부터 선진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북수리 유적의 유구 분포와 출토 유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공간 구성을 엿볼 수 있다.

북쪽 충적지에서는 주거용 건물지, 제련로, 집수정, 경작유구 등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 및 생산 관련 공간들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무문토기, 바리, 항아리, 시루 등 일상생활 용기들이 있으며, 제련로에서는 송풍관, 철광석, 슬래그 등이 발견되어 광석에서 금속원료를 추출하는 생산시설이었음이 밝혀졌다.

반면 남쪽 구릉지에는 죽은 자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무덤공간이 주로 조성되었다. 특히 4세기 전반~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마한과 백제의 무덤들은 시신을 묻는 형태에 따라 구덩무덤,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당시 지방세력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