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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부인, 신경준선생 유지(귀래정, 신말주후손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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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genia92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1일 (일) 21:45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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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부인, 신경준선생유지(귀래정신말주후손세거지)
대표명칭 설씨부인, 신경준선생유지(귀래정신말주후손세거지)
한자 薛氏婦人, 申景濬先生遺址(歸來亭申末舟後孫世居地)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남산길 32-3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86호
지정일 1994년 8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수량/면적 1,074㎡
웹사이트 설씨부인, 신경준선생 유지(귀래정, 신말주후손세거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곳은 신말주(申末舟, 1429∼1503)와 그의 부인인 설씨(薛氏, 1429∼1508), 그리고 신말주의 11대손인 신경준(申景濬, 1712∼1781) 등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

신말주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명신인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막내동생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여 세조 원년(1455) 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연산군 4년(1498) 70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는 부인의 고향인 순창으로 귀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이후 신말주의 후손은 순창에 세거하였다.

설씨부인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서화가였다. 강천사의 복원을 위해 성종 13년(1482)에 직접 지은 권선문(勸善文)과 사찰도가 보물 제728호로 지정되었다.

신경준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이다. 의학, 점술, 법률,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으며, 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산경표(山經表)’를 간행하는 등 지리학의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이 곳 유적지는 1996년부터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생활 영역과 사당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문화유산을 보관하는 유장각이 있고, 뒤쪽 언덕 위에는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이 있다.

영문

This is the house where a civil official of Joseon (1392-1910) Sin Mal-ju (1429-1503), his wife Lady Seol (1429-1508), their 11th generation descendant Sin Gyeong-jun (1712-1781) and others lived. (house or place?)

Sin Mal-ju made a great contribution in Sejo's ascending to the throne, and he became an official in 1455.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his retirement in 1498, he spent his later years in Sunchang, the hometown of his wife. His descendants settle down in Sunchang as well.

Lady Seol was an outstanding writer and calligrapher. In 1482, she wrote Gwonseonmun (Words to Encourage Good Deeds) and drew a view of a temple to encourage the reconstruction of Gangcheonsa Temple, which used to be in Sunchang. This document was registered as Treasure №728 in 1981.

Sin Gyeong-jun was an official and silhak scholar of late Joseon (1392-1910). He conducted researches in various fields such as medicine, divination (점술), law, geography and others. He created the map of Korean ridge system and made other remarkable achievements in geography.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 신말주(1429~1503)와 그의 부인인 설씨(1429~1508), 그리고 신말주의 11대손인 신경준(1712~1781) 등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

신말주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여 1455년 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1498년 은퇴한 후에는 부인의 고향인 순창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후 신말주의 후손은 순창에 세거하였다.

설씨부인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서화가였다. 순창 지역에 있던 사찰인 강천사를 재건하기 위해, 1482년 직접 권선문(勸善文)을 짓고 사찰도를 그려 문첩으로 제작하였다. 이 문첩은 1981년 보물 제728호로 지정되었다.

신경준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이다. 의학, 점술, 법률,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으며, 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하는 등 지리학의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이 유적지는 1996년부터 추진된 정비 사업을 통해 조성되었다. 주거공간 영역과 사당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유물을 보관한 유장각과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자료

  • 정훈, 「귀래정 신말주 연구」, 『한국언어문학』 92, 한국언어문학회, 2015.
  • 『세조실록』, 『성종실록』
  • 『귀래정 실기』, 귀래정 실기 간행 위원회, 1994.
→ 기존 안내문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신말주에 대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낙향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455년(세조 1) 계유정난의 공으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456년(세조 2)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간원 우정언, 1459년(세조 5) 종사관, 사간원 우헌납, 1461년(세조 7) 예조 정랑, 1464년(세조 10) 사간원 사간, 1466년(세조 12) 사간원 대사간, 형조 참의, 1476년(성종 7) 전주부윤, 1479년(성종 10) 진주목사 이후 창원부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사간원 대사간, 첨지중추부사, 전라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순창에 머문 시간은 부인의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낙향한 1470년(성종 1)부터 다시 기록에 등장한 1476년(성종 7)까지 대략 7년 정도의 기간과 70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난 1498년부터 죽음을 맞이한 1503년까지 6년 정도의 기간이다 .
결론적으로 그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은 절의의 인물이 아니다. 그의 절의와 은거하는 선비의 이미지는 그와 친분이 있고 세조 정권에 참여하였던 서거정과 강희맹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거정은 신말주가 지은 정자인 귀래정에 대해 「귀래정기」를 지어 주었고, 강희맹은 「전주부윤귀래정공신도비명」을 지어 주었는데, 신말주가 세조 즉위 후 낙담하여 낙향하였으나 형인 신숙주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벼슬을 하였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순창을 그리워하고 은거하려 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10대 후손인 신경준은 「유허비명」을 지어 그가 벼슬길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는 신숙주의 문집이나 연대기 자료에는 볼 수 없는 기록으로 세조 정권 당시 관직에 나아간 신말주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다.
그러므로 기존 안내문에 있는 신말주에 대한 설명은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