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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새긴 것으로,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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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새긴 것으로,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br/> --> 이 불상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의 불암사라는 옛 절터에 남아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높이 3m 정도 되는 바위에 앉아 있는 불상을 새겼으며, 제작시기는 고려시대라고 추정하고 있다.  
#*--> 이 불상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의 불암사라는 옛 절터에 남아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높이 3m 정도 되는 바위에 앉아 있는 불상을 새겼으며, 제작시기는 고려시대라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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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안내 문안 전면 재작성이 필요함.
 
#*문화재 안내 문안 전면 재작성이 필요함.
#*1. 불상이 자리한 환경에 대한 설명-'''>첫 문장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이곳에서부터 ~ 에 자리하고 있던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는 불상이다. 이 부처님은 높이 3미터 가량의 평평한 바위 면에 ~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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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이 자리한 환경에 대한 설명-'''>첫 문장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이곳에서부터 ~ 에 자리하고 있던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는 불상이다. 이 부처님은 높이 3미터 가량의 평평한 바위 면에 ~ 추정된다.'''
#*2. 얕은 부조로 바위에 새겨진 불상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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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얕은 부조로 바위에 새겨진 불상 내용 추가
#*3. 머리, 가슴, 대좌의 형태를 순차적으로 요약 설명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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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가슴, 대좌의 형태를 순차적으로 요약 설명할 필요가 있음
#*4. 항마촉지를 하고 있는 형태로 미루어 석가여래좌상일 가능성이 있음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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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마촉지를 하고 있는 형태로 미루어 석가여래좌상일 가능성이 있음을 표기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부처의 오른손을 땅을 향하고~상징한다’는 대목은 항마촉지인을 설명하는 문장임. 많은 사람들이 항마촉지인의 뜻은 모르지만 용어는 들어봤을 수 있으니 이 문장 말미에 괄호를 치고 ‘항마촉지인’이라는 용어를 병기하는 것이 어떨까 함.
 
#*‘부처의 오른손을 땅을 향하고~상징한다’는 대목은 항마촉지인을 설명하는 문장임. 많은 사람들이 항마촉지인의 뜻은 모르지만 용어는 들어봤을 수 있으니 이 문장 말미에 괄호를 치고 ‘항마촉지인’이라는 용어를 병기하는 것이 어떨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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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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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 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얕게 새긴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400m 가량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던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으며,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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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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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머리 주변에는 부처에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고, 입술 주위에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눈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고,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의 오른쪽 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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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 주위에는 석축과 기와 조각 등 사찰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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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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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0일 (일) 20:03 판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개별)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한자 石山里 磨崖如來坐像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산130-1
지정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
지정일 2003년 5월 16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軀)
웹사이트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270cm, 폭180cm 내외 크기로서,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위 면에 돋을새김하였다. 두부는 마치 두터운 모자를 쓴 듯 투박하게 표현되었으며,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큰 편인데 정사각형에 가깝고, 눈은 마모되어 분명치 않으나 가늘게 뜨고 있는 듯하다. 큼직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이 얕게 부조되어 부드러운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손의 모습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려는 듯한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으며, 여백을 따라 당초무늬를 새겼다. 특히 얕은 부조기법과 토속화된 상호표현, 평행 밀집형의 옷주름 표현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이 위치한 이 곳은 백제 의자왕(641-660)때 궁선대사가 세운 불암사터로 전해지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여기서부터 400m 가량을 걸어 올라가면 있는 자연 암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도왕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한 이 불상은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부처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 부근의 광배[頭光] 선과 입술 주위에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눈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고,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의 오른쪽 부분이 파손되어 있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 주위에는 석축(石築)과 기와 조각 등 사찰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이곳에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궁선대사가 세운 불암사가 있었다고 하며, 불암사는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새긴 것으로,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부터 400m 가량 올라간 곳에 있는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부처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머리 주변에는 부처에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고, 입술 주위에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눈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고,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의 오른쪽 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불암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 주위에는 석축과 기와 조각 등 사찰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새긴 것으로,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 이 불상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의 불암사라는 옛 절터에 남아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높이 3m 정도 되는 바위에 앉아 있는 불상을 새겼으며, 제작시기는 고려시대라고 추정하고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문화재 안내 문안 전면 재작성이 필요함.
      1. 불상이 자리한 환경에 대한 설명->첫 문장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이곳에서부터 ~ 에 자리하고 있던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는 불상이다. 이 부처님은 높이 3미터 가량의 평평한 바위 면에 ~ 추정된다.
      2. 얕은 부조로 바위에 새겨진 불상 내용 추가
      3. 머리, 가슴, 대좌의 형태를 순차적으로 요약 설명할 필요가 있음
      4. 항마촉지를 하고 있는 형태로 미루어 석가여래좌상일 가능성이 있음을 표기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부처의 오른손을 땅을 향하고~상징한다’는 대목은 항마촉지인을 설명하는 문장임. 많은 사람들이 항마촉지인의 뜻은 모르지만 용어는 들어봤을 수 있으니 이 문장 말미에 괄호를 치고 ‘항마촉지인’이라는 용어를 병기하는 것이 어떨까 함.

2차 수정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은 앉아 있는 모습의 부처를 약 3m 높이의 평평한 바위 면에 얕게 새긴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400m 가량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던 불암사라는 사찰의 옛터에 남아 있으며,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부처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머리 주변에는 부처에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가 있고, 입술 주위에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눈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고,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의 오른쪽 부분은 파손되어 있다.

불암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새겨진 암벽 주위에는 석축과 기와 조각 등 사찰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석산리_마애여래좌상 Object 석산리_마애여래좌상
L35-0184-0000 Heratige (전라북도_문화재자료_제184호)_석산리_마애여래좌상
항마촉지인 Concept 항마촉지인
불암사지 Place 불암사지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석산리_마애여래좌상 L35-0184-0000 isDesignatedAs
석산리_마애여래좌상 항마촉지인 isRelatedTo
석산리_마애여래좌상 불암사지 isRelatedTo


참고자료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501840000&pageNo=1_1_1_1 → 순창 적성면의 선돌마을을 지나 도왕마을 쪽으로 1㎞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약 2.5m 정도되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대좌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평평한 바위면에 두광과 신광, 불신, 대좌 등을 얕은 부조로 조각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항마촉지인을 결한 채 결가부좌하였다. 머리 부분은 마치 두터운 모자를 쓴 듯 투박하게 표현되었으며 민머리에 큼직한 상투 모양의 육계가 묘사되었다. 얼굴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편으로 눈은 마모되어 분명치 않으나 가늘게 뜨고 있는 듯하며 큼직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이 얕게 부조되었다. 특히 입술은 가장자리를 쳐지게 표현하였으며 입술과 이마 선을 따라 붉은색의 칠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목이 짧아서 3개의 주름인 삼도는 몸의 상단에 걸쳐지게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얼굴에 비하여 유난히 작게 표현되었는데 어깨가 좁고 위축되어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으며 왼쪽 어깨에는 대의 자락을 걸쳐 우견편단식 옷차림법을 보여 주고 있다. 법의 자락은 배부근에서 결가부좌한 두 다리 위로 평행밀집형의 가는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양 무릎 위에 살짝 올려 놓았다. 대좌는 연꽃모양으로 장식한 대좌이지만 오른쪽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광배는 키형의 거신광 안에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는데 광배의 여백을 따라 당초무늬를 선각하였다. 이 마애불은 얕은 부조기법과 토속화된 얼굴 표현, 평행밀집형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별다른 손상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불신에는 채색을 하였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당시 불상 조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디지털순창문화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0639 → 불암사 터의 중앙부 석축 서북 편 암반에 11~1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은 서남향의 암면에 1 구의 좌불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암불 바우라고 부른다. 2003년 5월 16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석산리 마애 여래 좌상(石山里磨崖如來坐像)의 상부에는 다른 암석을 인위적으로 덧대어 지붕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암벽의 높이는 약 300㎝이고, 불상의 총 높이는 약 260㎝이고, 폭은 128㎝, 머리 높이는 75㎝, 광배(光背)의 높이는 172㎝, 어깨의 폭은 90㎝이다.
  • 순창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산길나그네가 찾은 옛님, 다음 블로그, 2019.4.24. https://blog.daum.net/twj4689/4229 → 실제 답사 사진 및 안내판 사진 확인
  • 석산리 마애여래좌상(불암사지)-전북 임실, 순창[4], 문화재의 향기, 다음 블로그, 2015.4.19. https://blog.daum.net/mallarme8906/964 → 현재 문화재 안내판 위치(권역 안내판 위치 자리 추정) 확인
  • <참고> 불암사 터, 디지털순창문화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2104 → 입석 마을 앞 기념비에 의하면 불암사에는 도주가 마지막까지 주석(駐錫)하였으며 1869년경 폐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암사는 177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 순창조에 이미 폐사된 사찰로 나타나 있다. 현재 불암사 터에는 산죽[신우대]이 자라고 있으며, 석축(石築)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많은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며, 청자 파편을 비롯한 분청사기, 백자 조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석축 위쪽 암반에는 석산리 마애 여래 좌상[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84호]이 조성되어 있다.
  • 불암사 건립 설화, 디지털순창문화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1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