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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산청인지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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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4330000 산청 인지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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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산청 인지재
 
|대표명칭=산청 인지재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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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Injijae Ritual House, Sancheong
 
|한자=山淸 仁智齋
 
|한자=山淸 仁智齋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728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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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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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인지재는 1816년(순조16)에 건립한 이후 1898년 (광무2)에 중건한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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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인지재는 산청에서 세거하던 상산김씨 문중에서 순조 16년(1816)에 건립한 재실*이다. 제사 외에도 교육활동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인지’는 논어에서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지(智)’라 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인(仁)’이라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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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이름인 인지재는 논어에서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지(智)’라 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인(仁)’이라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조선 말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면우 곽종석(俛宇 郭鍾錫, 1846~1919)이 인지재에서 강의를 열기도 하였다.
  
인지재라 편액한 강당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규모이며 전면과 후면에 퇴칸을 둔 겹집형식으로서 방을 후퇴칸까지 연장하여 공간을 확장한 점이나 대칭의 배면에 반침을 둔 점 등은 조선후기의 평면구성이 확장 되는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5량(樑)으로 가구 하였으며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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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는 대문채, 강당, 측간이 있는데, 강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중앙 마루 뒷면에는 서적을 보관하기 위한 서고가 있다.  
대문채는 정면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구성한 평대문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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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건물의 좌측이나 우측 방에 서고를 두는 것과 달리 건물 중앙의 마루 뒷면에 서고를 둔 점과 앞뒤로 툇마루가 발달한 겹집유형인 점 등이 근대 한옥의 건축 경향을 연구하는데 참고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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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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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이곳은 산청에서 세거(世居)하던 상산김씨(商山金氏)들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하기 위해 사용하던 곳이다. 1816년(순조 16)에 건립한 이후 1898년(광무 2)에 중건하였다.
 
  
건물의 이름에 인(仁)과 지(智)를 쓴 이유는 곽종석의 인지재기(仁智齋記)에 자세히 나온다. 첫째, 사람의 성(性)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개이나 인과 지가 가장 귀하다. 둘째, 학문의 방법은 지(知)와 행(行)이 있는데 지(智)로써 알고 인(仁)으로써 행하는 것이다. 셋째, 유학의 공부법인 격물치지(格物窮理)는 지(智)에 이르는 방법이고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인(仁)을 하는 방법이다. 넷째, 학문을 좋아하면 지(智)에 가까워지고 힘껏 행하면 인(仁)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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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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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ijae Ritual House, Sancheong'''
  
건물의 이름을 인지재라 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인과 지를 합일하는데 있다. 당시는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선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로 우리의 도가 천하에 밝혀지지도 않고 행해지지도 않고 있었다. 이때 상산김씨는 인과 지를 합일하여 나를 이루고 남을 이루는 뜻으로 학문을 가르쳤는데 이는 곧 세계에 우리 한국을 넓히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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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ijae Ritual House was established in 1816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for the family of the Sangsan Kim Clan living in Sancheong. Apart from rituals, it was also used as a venue for educating the locals. In 1898, the ritual house was used as a lecture hall by Gwak Jong-seok (1846-1919), a scholar and prominent leader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at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name Injijae means “Hall of Benevolence and Wisdom” and comes from the ''Analects'' by Confucius. It conveys the meaning that it is benevolent to not be lazy about teaching and it is wise to not dislike learning.
* 人之性。仁智爲最貴。而學之道。知行而已。智以知之。仁以行之。是以聖門之學。必以知及仁守爲定本。推而至於成己成物樂山樂水。莫非是也。其用工節度。不過曰格物窮理以致知。克己復禮以爲仁爾。雖覺有蚤莫。得有淺深。而要之爲復聖之功而不畔於定本矣。其曰好學之近乎知。力行之近乎仁。盖所以勉人人之皆可與入德也。居是齋者。亦惟從事於克復之目。軆認於窮格之方。涵泳篤實。日新不已。以至私欲之凈而本心瑩然。則仁智合一。而存之爲成己。施之爲成物。皆將不外於性分之所固有者而足矣。若夫喣喣以爲仁。諓諓以爲智。汗漫流連於山水之樂。而竊仁智之跡以爲高而止焉。則非所以稱斯扁也。夫仁必本於孝悌。智莫急於當務。爲仁智者盍亦知所先焉。嗚呼道之不明不行於天下。而士無所於歸矣。余將見金氏之與有功於斯道。而是齋之日大以恢。能廣吾韓於天下也。謹書此以須之。
 
  
근처에는 물천서당(勿川書堂) 등 상산김씨 관련 유적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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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lex includes a gate quarters, a lecture hall, and a restroom. The lecture hall ha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underfloor-heated rooms on each side, and a narrow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and rear of the building. At the back of the wooden-floored hall is a place for storing books. This is an unusual feature as books are typically kept in one of the side rooms of a lecture hall.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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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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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재는 산청에서 세거하던 상산김씨 문중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16년에 지었다. 제사 외에 지역 주민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898년에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곽종석(1846-1919)이 인지재에서 강의를 열기도 하였다. 인지재라는 이름은 『논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을 ‘인(仁)’이라 하고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지(智)’라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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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에는 대문채, 강당, 측간이 있다. 강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보통 강당 건물에서는 왼쪽이나 오른쪽 방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인지재의 강당은 마루 뒷면에 서적을 보관하는 공간을 둔 독특한 구조이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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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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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평지리 인지재,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33538&cid=40942&categoryId=3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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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인지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43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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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인지재, 산청 문화관광. https://www.sancheong.go.kr/tour/selectTourView.do?key=628&tourNo=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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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우집』
  
===Links===
 
 
 
 
=='''참고자료'''==
 
* 산청 인지재 (山淸 仁智齋),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82150
 
  
* 산청 인지재 (山淸 仁智齋),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4330000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산청군 문화유산]]
 
[[분류:산청군 문화유산]]
 
[[분류:문화재자료]]
 
[[분류:문화재자료]]
[[분류: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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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강당]]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
[[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10월 4일 (월) 14:13 기준 최신판

산청 인지재
Injijae Ritual House, Sancheong
산청 인지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인지재
영문명칭 Injijae Ritual House, Sancheong
한자 山淸 仁智齋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728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33호
지정일 2008년 2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
수량/면적 2동/710㎡
웹사이트 산청 인지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청 인지재는 산청에서 세거하던 상산김씨 문중에서 순조 16년(1816)에 건립한 재실*이다. 제사 외에도 교육활동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건물 이름인 인지재는 논어에서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지(智)’라 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인(仁)’이라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조선 말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면우 곽종석(俛宇 郭鍾錫, 1846~1919)이 인지재에서 강의를 열기도 하였다.

경내에는 대문채, 강당, 측간이 있는데, 강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중앙 마루 뒷면에는 서적을 보관하기 위한 서고가 있다.

보통 건물의 좌측이나 우측 방에 서고를 두는 것과 달리 건물 중앙의 마루 뒷면에 서고를 둔 점과 앞뒤로 툇마루가 발달한 겹집유형인 점 등이 근대 한옥의 건축 경향을 연구하는데 참고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 재실(齋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영문

Injijae Ritual House, Sancheong

Injijae Ritual House was established in 1816 for the preparation of ancestral rituals for the family of the Sangsan Kim Clan living in Sancheong. Apart from rituals, it was also used as a venue for educating the locals. In 1898, the ritual house was used as a lecture hall by Gwak Jong-seok (1846-1919), a scholar and prominent leader of the anti-Japanese movement at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name Injijae means “Hall of Benevolence and Wisdom” and comes from the Analects by Confucius. It conveys the meaning that it is benevolent to not be lazy about teaching and it is wise to not dislike learning.

The complex includes a gate quarters, a lecture hall, and a restroom. The lecture hall ha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underfloor-heated rooms on each side, and a narrow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and rear of the building. At the back of the wooden-floored hall is a place for storing books. This is an unusual feature as books are typically kept in one of the side rooms of a lecture hall.

영문 해설 내용

인지재는 산청에서 세거하던 상산김씨 문중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16년에 지었다. 제사 외에 지역 주민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898년에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곽종석(1846-1919)이 인지재에서 강의를 열기도 하였다. 인지재라는 이름은 『논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을 ‘인(仁)’이라 하고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지(智)’라 하는 데서 따온 말이다.

경내에는 대문채, 강당, 측간이 있다. 강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보통 강당 건물에서는 왼쪽이나 오른쪽 방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인지재의 강당은 마루 뒷면에 서적을 보관하는 공간을 둔 독특한 구조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