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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각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충원(朴忠元)의 충심을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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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각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낙촌 박충원의 충심을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세웠다. 박충원은 중종36년(1541)에 영월 군수로 부임하여 단종의 묘를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박충원은 중종36년(1541) 영월군수로 부임했을 때 단종의 묘를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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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에는 ‘박충원이 영월 군수로 부임할 당시 영월의 관리들이 갑자기 죽는 요사스러운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이를 노산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충원이 노산의 묘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 뒤로는 탈이 없었고 요사스런 말도 사라져서 사람들이 박충원을 칭송하였다.’라는 일화가 전한다.
 
 
선조수정실록에 의하면 ‘박충원이 영월 군수로 부임할 당시 영월에 요사스런 일이 발생하여 여러 명의 관리가 갑자기 죽는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노산군의 빌미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충원이 노산의 묘에 치제를 하였고 그 뒤로는 탈이 없었고 요사스런 말도 사라졌는데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하여 그를 칭송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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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제: 국가에서 왕족이나 대신, 국가를 위하여 죽은 사람에게 제문과 제물을 갖추어 지내주는 제사,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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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제: 임금이 제문과 제물을 보내어 지내주는 제사, 또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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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2024년 2월 27일 (화) 13:05 판


박충원 낙촌비각 朴忠元 駱村碑閣
문경공 낙촌 밀양 박충원선생 기적비, 디지털영월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Goto.png 종합안내판: 영월 장릉



해설문

국문

이 비각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낙촌 박충원의 충심을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세웠다. 박충원은 중종36년(1541)에 영월 군수로 부임하여 단종의 묘를 정비하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선조수정실록』에는 ‘박충원이 영월 군수로 부임할 당시 영월의 관리들이 갑자기 죽는 요사스러운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이를 노산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충원이 노산의 묘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 뒤로는 탈이 없었고 요사스런 말도 사라져서 사람들이 박충원을 칭송하였다.’라는 일화가 전한다.


  • 치제: 임금이 제문과 제물을 보내어 지내주는 제사, 또는 그런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