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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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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1월 16일 (월) 11:02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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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포비
대표명칭 동학농민혁명기포비
한자 東學農民革命起包碑



해설문

국문

동학농민혁명은 외세 침략에 반대하는 보국안민(保國安民)의 민족주의 민중화 운동이었다. 이는 곧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민중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 혁명이었다.

낡은 봉건왕조의 신분제를 극복하고 평등한 인간사회 건설을 지향하면서 목숨을 걸고 외세의 침략 세력을 물리치는 싸움에 나섰던 우리 금산 동학혁명군의 숭고한 정신은 이 시대의 역사를 전환시키는 커다란 발자취로 남아 있다. 금산의 동학혁명은 1894년 3월 8일 제원역의 동학 최초 무장혁명 기포지와 대둔산으로 이어진 최후의 항쟁지라는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평등과 저항의 시작인 동학농민혁명의 시작과 끝이 우리 금산에 있었다. 그 시작과 끝이라는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가장 치열했던 역사적 혁명의 회오리 중심에 가장 큰 아픔의 역사를 지녔다. 이를 이겨낸 후대들의 노력 또한 금산의 동학농민혁명이라는 큰 울림으로 역사에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제원초등학교는 옛 제원역 터이다. 동학농민혁명 최초의 무장기포가 이루어진 소중한 역사의 성지이다. 이곳에 그날의 역사적 메아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모두의 마음을 모아 ‘동학농민혁명기포비’를 세운다.

2022년 12월 금산문화원 금산역사문화연구소


  • 보국안민: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 봉건왕조 :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대 정치제도
  • 무장기포 : 칼이나 총 등 군대 장비를 갖추어 일어남

영문

Monument Commemorating the Launch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is monument commemorates the site of the first armed uprising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which took place on the 8th day of the 3rd lunar month in 1894/March 8, 1894, at Jewon Station (the site of today's Jewon Elementary School) in Geumsan.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was a democratization movement that fought for the defense of the country and the peace of the people. Sparked by the excessive exploitation of peasants by local officials under the antiquated caste system, the revolution emerged out of Donghak (“Eastern Learning”), an indigenous religious movement established in 1860 by Choe Je-u (1824-1864) in opposition to the growing presence of Western powers and Christianity. Although it grew into an organized nationwide movement,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ultimately failed, drawing to a close at the end of the 1st lunar month in 1895/in late January 1895 on Daedusan Mountain in Geumsan. Nevertheless, the revolution's basic philosophy instilled in the Korean people a sense of equality and resistance, which laid the groundwork for subsequent independence and democratization movements.

As the location of both the first armed uprising and the last resistance of the movement, Geumsan is of great historic significance to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is monument was erected in December 2022 to convey this precious history to future generations and to celebrate the noble spirit of the local revolutionaries who risked their lives fighting for the cause.

Geumsan Institute of History and Culture, Geumsan Cultural Center
December 2022


  • 동학논민혁명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기사에서 가져왔는데 너무 길기도 해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 양력/음력 확인 필요
  • 첫 문단, 마지막 문단에 약간 반복적인 내용이 있어서 다시 정리했습니다.
  • 원래 국문의 중요 표현 등을 최대로 살리려고 했는데 의미가 약간 달라졌어요.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1894년 3월 8일 동학농민혁명 최초의 무장 봉기가 일어난 역사의 성지이다.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2022년 12월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1824-1864)가 창시한 종교이다. 19세기 한반도에 등장하기 시작한 서구 세력과 개신교에 대립하는 의미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사람이 곧 하늘이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1894년 고부(지금의 정읍 지역)의 군수가 농민들을 과도하게 수탈하자, 동학교도와 농민군이 봉기하며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이후 1년 여간 계속된 혁명은 외세 침략에 반대하는 보국안민(保國安民)의 민족주의 민중화 운동이었다. 낡은 봉건왕조의 신분제를 극복하고 평등한 인간사회 건설을 지향하면서 목숨을 걸고 외세의 침략 세력에 저항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동학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혁명은 결국 실패하였으나 혁명의 기본 정신은 이후의 항일 의병 운동과 3·1 독립 만세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금산의 제원역(지금의 제원초등학교 자리)에서 전국 최초로 봉기하였으며, 이듬해 1월 하순까지 대둔산에서 항전한 최후의 항쟁지이기도 하다. 평등과 저항의 상징인 동학농민혁명의 시작과 끝이 금산에 있었으며, 금산 동학혁명군의 숭고한 정신은 한국 현대사로 이어지는 커다란 발자취로 남아 있다.

2022년 12월 금산문화원 금산역사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