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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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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돌무덤[石塚]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이재(紛齋) 백이정(白頤正, 1247~1323) 선생의 묘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기록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설령 선생의 묘라 하더라도 어떤 연유로 이곳에 선생의 묘가 세워졌는지 정확한 사연을 알 수 없다. 선생이 살았던 당시는 원(元)나라의 간섭이 심했던 시기로, 부자간에도 왕위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혼란이 극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남해 지방으로 왔다가 죽은 뒤에 이곳에 묻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다만 이 곳의 돌무덤과 주변의 돌담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돌담 쌓기 양식인 엇물림식 돌쌓기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 사람의 묘라는 것은 분명하다. 선생은 안향(安珦)의 문인(門人)으로, 1298년(충렬왕 24)에 원나라에 들어가 10년 동안 머물며,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안향이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들여왔다고 한다면, 그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크게 활성화시킨 사람이 바로 선생이었다. 이처럼 안향에게서 선생한테 전해진 우리나라 성리학은 이후 이제현(李齊賢), 박충좌(朴忠佐)를 통해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에게 전해지고, 다시 조선의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에게 이어졌다. 현재 남해군 이동면 난음마을에 있는 난곡사(蘭谷祠)에는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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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유학자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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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정은 128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1298년에는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 연경으로 가 10년을 머물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의 제자이며, 이제현, 박충좌 등 많은 제자를 가르쳐 성리학의 체계를 확립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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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주위에는 평평한 바위로 담장을 둘렀고 바닥에는 자연석이 깔려 있다. 주변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듬어진 돌을 계단식으로 쌓았다. 봉분을 쌓아 올린 돌이나 주변 담장을 쌓은 방법이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성곽 축조법을 따르고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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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난음리에는 백이정을 기리는 사당인 난곡사(蘭谷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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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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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of Baek I-jeong, Namhae (Presu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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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lace is known to be the tomb of Baek I-jeong (1247-1323), a Neo-Confucian scholar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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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k I-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284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298, he followed King Chungseon (r. 1298, 1308–1313) to Yanjing (today’s Beijing area) in China, where he stayed for 10 years to study neo-Confucianism. He was also a student of An Hyang (1243-1306), who first introduced neo-Confucianism from China to Korea. Baek actively pursued his studies, taught many disciples, and greatly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eo-Confucian thinking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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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mb is located in a dense pine forest. The burial mound is enclosed by a wall made of flat stones. The area in front of the mound is paved with unhewn stones. There is a terraced retaining wall behind the mound to protect the tomb from landslides. The stonemasonry techniques with which the mound and enclosure wall were built follow the typical Goryeo-period architectural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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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goksa Shrine, dedicated to Baek I-jeong, is located in Naneum-ri Village, also in Nam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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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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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백이정(1247-1323)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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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정은 128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1298년에는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 연경으로 가서, 10년 동안 머물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1243-1306)의 제자이며,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많은 제자를 가르쳐 성리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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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주변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봉분 주위에는 평평한 바위로 담장을 둘렀다. 봉분 앞 바닥에는 자연석을 깔았고, 뒤쪽에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쌓은 석축이 있다. 봉분을 쌓아 올린 돌이나 주변 담장을 쌓은 수법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성곽 축조법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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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난음리에는 백이정을 기리는 사당인 난곡사가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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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전 백이정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15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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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전 백이정 묘,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9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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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목) 03:05 기준 최신판

남해 전 백이정 묘
Tomb of Baek I-jeong, Namhae (Presumed)
남해 전 백이정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남해 전 백이정 묘
영문명칭 Tomb of Baek I-jeong, Namhae (Presumed)
한자 南海 傳 白頤正 墓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평산리 54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55호
지정일 1996년 3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남해 전 백이정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시대의 유학자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백이정은 128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1298년에는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 연경으로 가 10년을 머물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의 제자이며, 이제현, 박충좌 등 많은 제자를 가르쳐 성리학의 체계를 확립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무덤 주위에는 평평한 바위로 담장을 둘렀고 바닥에는 자연석이 깔려 있다. 주변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듬어진 돌을 계단식으로 쌓았다. 봉분을 쌓아 올린 돌이나 주변 담장을 쌓은 방법이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성곽 축조법을 따르고 있다.

남해 난음리에는 백이정을 기리는 사당인 난곡사(蘭谷祠)가 있다.

영문

Tomb of Baek I-jeong, Namhae (Presumed)

This place is known to be the tomb of Baek I-jeong (1247-1323), a Neo-Confucian scholar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Baek I-j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284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298, he followed King Chungseon (r. 1298, 1308–1313) to Yanjing (today’s Beijing area) in China, where he stayed for 10 years to study neo-Confucianism. He was also a student of An Hyang (1243-1306), who first introduced neo-Confucianism from China to Korea. Baek actively pursued his studies, taught many disciples, and greatly contributed to the spread of neo-Confucian thinking in Korea.

The tomb is located in a dense pine forest. The burial mound is enclosed by a wall made of flat stones. The area in front of the mound is paved with unhewn stones. There is a terraced retaining wall behind the mound to protect the tomb from landslides. The stonemasonry techniques with which the mound and enclosure wall were built follow the typical Goryeo-period architectural style.

Nangoksa Shrine, dedicated to Baek I-jeong, is located in Naneum-ri Village, also in Namha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백이정(1247-1323)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백이정은 128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지냈다. 1298년에는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 연경으로 가서, 10년 동안 머물면서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1243-1306)의 제자이며,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많은 제자를 가르쳐 성리학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무덤 주변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봉분 주위에는 평평한 바위로 담장을 둘렀다. 봉분 앞 바닥에는 자연석을 깔았고, 뒤쪽에는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쌓은 석축이 있다. 봉분을 쌓아 올린 돌이나 주변 담장을 쌓은 수법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성곽 축조법을 따르고 있다.

남해 난음리에는 백이정을 기리는 사당인 난곡사가 있다.

문맥요소

ID Class Label Description
남해_전_백이정_묘 Place 남해_전_백이정_묘 백이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백이정 Actor 백이정(白頤正,1247∼1323)
남해_난곡사 Place 남해_난곡사 백이정의 위패는 남해 난곡사에 모셔져 있다.
J38-0155-0000 Heritage (경상남도_기념물_제155호)_남해_전_백이정_묘 경상남도 기념물 제155호에 지정되어 있다.
안향 Actor 안향(安珦,1243~1306)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남해_전_백이정_묘 백이정 isTombOf
백이정 남해_난곡사 isEnshrinedIn
남해_전_백이정_묘 J38-0155-0000 isDesignatedAs
안향 백이정 hasDisciple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