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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대방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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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방산봉수대
남해 대방산 봉수대, 남해군 창선면 홈페이지.
대표명칭 남해대방산봉수대
한자 南海臺方山烽燧臺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옥천리 산75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48호
지정일 2003년 6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통통신/통신/봉수
관리자 남해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남해 대방산 봉수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이 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대방산 산정부(山頂部)에 위치한 대방산 봉수대는 고려 명종(明宗, 1171~1197)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봉수로(烽燧路) 가운데서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 2봉수로에 속한 것으로, 남해 금산봉수대로부터 연결받은 봉수를 북쪽의 사천 각산(角山) 봉수대로 연결하고 있다. 현재 봉수대의 원형은 찾을 수 없지만, 이곳이 봉수대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지름 13m, 높이 3m의 석축과 연대로 추정되는 유지(遺址), 그리고 건물 터가 남아 있다.

수정 국문

초고

1차 수정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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