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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안동 마을 동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51점의 문서는 조선시대 중기~후기의 마을 형성과 발전 과정, 마을 사람들의 구성과 신분 간의 사회적 관계, 향촌 사회의 조직 운영과 이를 둘러싼 권력관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지방 자치의 근간을 보여 주며, 조선시대 나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문헌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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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안동은 고려시대의 문신 정가신(1224-1298), 조선시대의 문신 신숙주(1417-1475)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전라도 지역의 3대 명촌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금안동이라는 이름은 “황금 안장”에서 유래되었는데, 정가신이 원나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황금 안장을 단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안동 주민들은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마을을 다시 잘 가꿔가자는 의미에서 동계를 조직하였다. 이 동계는 나주정씨, 하동정씨, 풍산홍씨, 서흥김씨 등 네 문중이 주축이 되어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쌍계정에서 모임을 갖는다.
  
  

2024년 5월 5일 (일) 19:07 판


금안동 동계 소장 일괄 문서
대표명칭 금안동 동계 소장 일괄 문서
한자 金安洞 洞契 所藏 一括 文書
지정번호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



해설문

국문

금안동은 문정공 정가신(文靖公 鄭可臣)이 원(元)나라의 세조가 하사한 황금 안장을 단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호남의 3대 명촌 중 하나이다. 정가신, 신숙주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고, 마을을 잘 가꿔가자는 의미로 결성한 대동계를 약 450여 년간 운영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직후, 정상(鄭詳)의 주도로 마을의 계(契)를 발전시킨 금안동 동계(金安洞 洞契)는 나주 정(鄭)씨, 하동 정(鄭)씨, 풍산 홍(洪)씨, 서흥 김(金)씨 등 사성(四姓)의 문중이 주축이 되어 매년 쌍계정에서 열리고 있다.

금안동 동계 소장 문서는 총 51점으로 정상의 금안동좌목중수서(金鞍洞座目重修序) 등 금안동향약(金安洞鄕約)이라고 할 수 있는 필사본 서책들이다. 주로 조선 시대 중기~후기의 마을 형성과 발전 과정, 마을 사람들의 구성과 신분 간의 사회적 관계, 향촌 사회의 조직 운영과 이를 둘러싼 권력관계 등을 기록하고 있어 조선 시대 나주목(羅州牧)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소중한 문헌자료이다.

금안동 동계는 오늘날 지방 자치의 근간을 보여 주는 것으로 마을의 전통이 급속히 사라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소중히 보전해야 할 향토문화유산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나주 금안동 마을 동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51점의 문서는 조선시대 중기~후기의 마을 형성과 발전 과정, 마을 사람들의 구성과 신분 간의 사회적 관계, 향촌 사회의 조직 운영과 이를 둘러싼 권력관계 등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지방 자치의 근간을 보여 주며, 조선시대 나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문헌자료이다.

금안동은 고려시대의 문신 정가신(1224-1298), 조선시대의 문신 신숙주(1417-1475)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전라도 지역의 3대 명촌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금안동이라는 이름은 “황금 안장”에서 유래되었는데, 정가신이 원나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황금 안장을 단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안동 주민들은 임진왜란 이후 황폐해진 마을을 다시 잘 가꿔가자는 의미에서 동계를 조직하였다. 이 동계는 나주정씨, 하동정씨, 풍산홍씨, 서흥김씨 등 네 문중이 주축이 되어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쌍계정에서 모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