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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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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생가지
김좌진 장군 생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좌진 장군 생가지
한자 金佐鎭 將軍 生家地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외 (행산리)
지정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
지정일 1989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수량/면적 1,205㎡
웹사이트 김좌진 장군 생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좌진장군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고종 26년(1889)에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안동이고 호는 백야(白冶)다. 이곳은 김좌진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김좌진은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총명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07년에 졸업한 후, 홍성군 길산면에 위치한 90여칸의 자택에 호명학교를 세워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에는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 독립투쟁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1920년 10월, 일본군을 상대로 청산리대첩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1925년에는 김혁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하여 중앙위원장을 맡았고, 1929년에는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여 주석에 올랐다.

그러나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0년 1월, 40세의 나이에 공산당 청년당원에게 암살당했다. 그 후,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좌진(1889-1930)의 생가이다. 원래의 건물이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김좌진은 홍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총명하였다.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07년에 졸업한 후 육군 장교에 임관되었다. 그러나 같은해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고, 김좌진은 고향집에 호명학교를 세워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에는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항일 독립투쟁을 하였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은 군사조직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1920년 일본군을 상대로 청산리대첩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1925년에는 신민부를 조직하여 만주지역 한국인들의 생활 향상에 주력하였고, 1929년에는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여 주석에 올랐다.

그러나 김좌진은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0년 공산당 청년당원에게 암살당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