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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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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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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행나무는 조룡리 마을에 위치한 섬계서원의 강당인 경의재 뒤편에 서 있다. 섬계서원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문신 김문기(1399-1456)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실제 나무의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1802년에 섬계서원을 세울 때 이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터를 삼아 서원의 건물들을 지었다고 한다. 높이는 약 28m, 둘레는 약 1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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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나무 밑동에 불이 붙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호미로 긁어 불을 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23년 11월 2일 (목) 19:29 판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Ginkgo Tree of Joryong-ri, Geumneung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영문명칭 Ginkgo Tree of Joryong-ri, Geumneung
한자 金陵 釣龍里 銀杏나무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51외 2필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300호
지정일 1982년 11월 9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은행나무는 조룡리 마을에 위치한 섬계서원(剡溪書院)의 강당인 경의재 뒤편에 서 있는 고목이다. 섬계서원에 모신 백촌 김문기가 죽은 1,400년 경에 심은 것으로 보아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한다. 높이는 약 28m, 둘레는 약 12m이다.

임진왜란 때 나무 밑동에 불이 붙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호미로 긁어 불을 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순조 2년(1802)에 섬계서원을 세울 때 이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터를 삼아 강당과 사당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이 은행나무는 조룡리 마을에 위치한 섬계서원의 강당인 경의재 뒤편에 서 있다. 섬계서원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문신 김문기(1399-1456)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실제 나무의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1802년에 섬계서원을 세울 때 이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터를 삼아 서원의 건물들을 지었다고 한다. 높이는 약 28m, 둘레는 약 12m이다.

임진왜란 때 나무 밑동에 불이 붙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호미로 긁어 불을 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