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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대율리 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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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대율리 대청
군위 대율리 대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위 대율리 대청
한자 軍威 大栗里 大廳
주소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858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
지정일 1991년 5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군위 대율리 대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청은 조선 전기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消失)*되었고 인조(仁祖) 10년(1632)에 중창重創*되었고 효종(孝宗) 2년(1651)과 숙종(肅宗) 32년(1705)에 각각 중수(重修)*된 바 있으며, 1992년에 완전 해체, 보수되었다. 건물의 명확한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고 학사(學舍), 마을 모임처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2칸이다. 실 구성은 마루와 방이 있었으나 후에 벽체를 모두 없애고 방 자리까지 마루를 깔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둥근기둥 위에는 지붕 하중을 받치는 보머리를 보강한 초익공(初翼工)*을 얹은 건축양식이다.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기둥머리를 잡아 주는 창방(昌防)*과 처마도리*사이에 두 종류의 꽃모양 받침재 1개씩을 끼웠다. 지붕 뼈대인 도리*는 5개로 5량가이며, 중간 도리는 공포(栱包)*로 짜 맞춘 포대공(包臺工)*으로 받쳤다. 꼭대기 도리는 사다리꼴 판재 여러 장을 겹쳐 만든 것과 판재에 넝쿨무늬가 조각된 두 종류의 대공(臺工)*으로 받쳤다.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다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건물의 모습이나 꾸민 수법은 일반 민가건물에서는 그 예를 찾기가 힘든 보기 드문 짜임새 있는 건물이다.


  • 소실(消失) : 사라져 없어짐
  • 중창(重創)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 중수(重修)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 초익공(初翼工) : 익공의 쇠서가 한 개로 된 집
  • 창방(昌防) : 나무 구조 건물의 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
  • 처마도리 : 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중 기둥 위에 있는 나무
  • 도리 : 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 공포(栱包) :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주두, 소로, 첨차, 제공, 한대, 살미 등의 부재를 짜넣은 것
  • 포대공(包臺工) : 보나 도리를 받치는 대공을 공포처럼 짠 것
  • 대공(臺工) : 보나 도리를 받치는 부재
  • 연등천장 : 별도로 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본래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초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2년과 1651년, 1705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마을 중앙에 자리한 이 건물은 학당 및 마을의 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되어 왔다.

본래 마루와 방이 있었으나 1992년에 완전히 해체한 후 보수하면서 벽체를 모두 없애고 방 자리까지 마루를 깔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