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씨 봉재공파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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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신씨 봉재공파 묘역
대표명칭 고령신씨 봉재공파 묘역
한자 高靈申氏 鳳齋公派 墓域)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12-1
지정번호 향토유적 제16호
지정일 2021년 2월 18일



해설문

국문

고령 신씨 봉재공파는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약 500여 년 동안 ‘봉두마을’이라 불렸던 이곳에 살며 마을 뒷산인 봉두산에 대대로 묘를 조성하고 제를 올렸다.

고령 신씨는 대표적인 사대부 가문으로, 경북 고령이 본관이다. 그 중 봉재공파는 세종 시대 문신인 신장(申檣)의 손자이자 신중주(申仲舟)의 셋째 아들 봉재공 신해(申海)가 시조이다. 봉재공은 사마시*를 거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일패동 봉두산 아래 정착하여 학문에 힘썼다. 봉두산의 ‘봉(鳳)’에 집 ‘재(齋)’를 따서 스스로를 ‘봉재(봉두산 아래 사는 겸손한 사람)’라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묘역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집(申潗)의 묘, 신경광(申慶洸)의 묘, 신범우(申範雨)의 묘, 신흥구(申興求)의 묘 총 4기가 있으며,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묘표와 문인석, 동자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랜 기간 한 자리에 조성된 단일 가문의 묘역으로 조선 사대부 가문의 묘지 선정과 제사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시조인 봉재공 신해의 묘는 1900년 금곡동에 고종황제의 능침**인 홍릉을 마련하면서 주변에 있는 묘를 이전하는 조치에 따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반곡리 태행산으로 이장하였다.


  • 사마시: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다.
  • 능침: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