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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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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화면’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적합해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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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삼존과 시왕, 판관 등의 권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순조 22년(1822) 문경 봉암사 만일회(萬一會) 회원들이 시주하여 승려 화가 의은(義銀)이 그렸으며, 장흥사로 옮겨 오게 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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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연화대좌 위에 앉아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은 어깨 근처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을 포갠 자리에 얹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무릎 아래에는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귀신 왕인 무독귀왕(無毒鬼王)과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이승에 돌아와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린 젊은 스님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그림의 양옆에는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나찰, 천동, 천녀가 구름을 배경으로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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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화는 양질의 안료를 사용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적색 위주의 채색에 녹색과 청색을 조금씩 사용하여 대비를 주었으며, 시왕들이 머리에 쓴 관(冠)이나 손에 든 물건 같은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하였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6월 20일 (일) 11:44 판


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
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
한자 巨濟 長興寺 地藏菩薩十王幀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196-1번지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4호
지정일 2007년 9월 6일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보살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점
웹사이트 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화면의 중앙상단에 화려한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입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주존의 무릎아래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하고 서 있으며, 주존의 양측좌우에 5존씩 시왕(十王)상을 배치하고 그 뒤 좌우로 판관(判官)과 녹사사자(祿仕使者), 그리고 큰 입을 벌린 나찰(羅刹)이 있으며, 지장의 두광 양편으로 공양물(供養物)을 든 천동(天童), 천녀(天女)등 19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법의(法衣)는 홍색이 주류이며 녹청색으로 대비색을 쓰고 있는데. 시왕들의 관(冠), 홀(笏) 등 주요부분에 금박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장식적이고 화사한 불화였음을 느끼게 한다. 이 불화는 1823년(道光3年,癸未)에 금어(金魚) 의은(義銀)스님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화기(畵記)를 통해 알 수 있으며, 화면의 크기는 가로 113.1㎝, 세로 124㎝로 조선후기 지장시왕도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큰 불화(佛畫)로서 20017년 9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삼존과 시왕, 판관 등의 권속들을 대칭으로 그린 불화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화면 좌측 아래쪽에는 남아 있는 그림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畵記]을 통해 이 불화가 1822년 의은(義銀) 스님에 의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염불을 드리는 만일회(萬日會)를 개최했던 문경 봉암사에 봉안하기 조성되었는데, 장흥사로 옮겨 오게 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화면의 중앙에 자리한 지장보살은 연꽃 위에 앉아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은 어깨 근처까지 들어올리고 왼손은 무릎을 포갠 자리에 얹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무릎 아래에는 민머리를 한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와 관을 쓴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화면 좌우에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나찰, 천동, 천녀가 구름을 배경으로 배치되었다.

이 그림은 양질의 안료를 사용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적색 위주의 채색에 녹색과 청색을 조금씩 사용하여 대비를 주었으며, 시왕들이 머리에 쓴 관(冠)이나 손에 든 지물 등의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하였다.

  • 기존 국문에는 제작 시기를 1823년(道光3年,癸未)으로 표기하였으나, 민백이나 문화재청에서는 1822년으로 표기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화기(畵記) 이미지에 의하면, 1822년(도광2년, 壬午) 10월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1822년으로 수정하였다.
  • “지장보살시왕탱은 함경도에서 한 노스님이 걸망에 넣어 거제도로 모시고 왔다”며 “지장보살님이 장흥사 최초의 부처님이시다. 장흥사는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지장보살시왕탱은 많은 사람들이 탐을 냈다. 1970년대에 도난을 당했으나, 그들이 다시 소포로 보내어 지금까지 모시고 있다”고 전했다.

1차 수정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삼존과 시왕, 판관 등의 권속들을 대칭으로 그린 불화이다. 순조 22년(1822) 승려 화가 의은(義銀)이 문경 봉암사에 봉안하기 위해 그렸으며, 장흥사로 옮겨 오게 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화면 중앙의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연꽃 위에 앉아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은 어깨 근처까지 들어올리고 왼손은 무릎을 포갠 자리에 얹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무릎 아래에는 민머리를 한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와 관을 쓴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화면 좌우에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나찰, 천동, 천녀가 구름을 배경으로 배치되었다.

이 불화는 양질의 안료를 사용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적색 위주의 채색에 녹색과 청색을 조금씩 사용하여 대비를 주었으며, 시왕들이 머리에 쓴 관(冠)이나 손에 든 지물 등의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하였다. 화면 좌측 아래쪽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화면 좌측 아래쪽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 화면 좌측 아래쪽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화기)가 남아 있다.
    • 순조 22년(1822) --> 순조 23년(1823)
  2. 분야별 자문위원 2
    • 1. 유물명칭 변경
    • -> 거제 장흥사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 2. 순조 22년(1822) 승려 화가 의은(義銀)이 문경 봉암사에 봉안하기 위해 그렸으며-> 순조 22년(1822) 문경 봉암사 만일회(萬一會) 회원들이 시주하여 승려 화가 의은(義銀)이 그린 불화이다.
    • 3.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삼존과 시왕, 판관 등의 권속들을 대칭으로 그린 불화이다. -> 경상남도 거제 장흥사에 봉안된 불화로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으로 구성된 지장보살 삼존과 명부의 시왕과 판관 등의 권속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 4. 연꽃 위에 -> 연화대좌 위에
    • 5. 민머리를 한 승려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와 관을 쓴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 지옥에서 지장보살의 모습을 직접 보았다고 전해지는 중국 개원사 승려인 도명존자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무독귀왕이 협시로 그려있다.
    • 6. 화면 좌우에는 -> 화면 중앙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그려진 10인은 지옥에 머무르며 죄를 지은 영혼을 심판하는 시왕을 나타낸 것이다.
  1.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첫문장이 너무 어렵습니다.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뒤 심판을 받는 세계를 그린 불화이다’라는 식으로 고치는 게 나을 듯.
    • 민머리를 한 승려모습의=>‘민머리를 한’ 삭제 요망
    • 화면 좌우에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나찰, 천동, 천녀가 구름을 배경으로 배치되었다.=>주변에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인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악귀, 동자와 선녀가 둘러싸고 있다. 이런 형식의 불화는 9~10세기 중국 돈황의 지장도에서도 보이며 우리나라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제작되었다.
    • 손에 든 지물 등의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하였다.=>‘지물’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습니다. ‘물건’ 정도로 바꿔서 이해를 돕는게 필요해 보입니다. ‘손에 든 지물 같은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 곳곳에 ‘화면’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적합해보이지 않습니다.

2차 수정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삼존과 시왕, 판관 등의 권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순조 22년(1822) 문경 봉암사 만일회(萬一會) 회원들이 시주하여 승려 화가 의은(義銀)이 그렸으며, 장흥사로 옮겨 오게 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중앙의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연화대좌 위에 앉아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은 어깨 근처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을 포갠 자리에 얹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무릎 아래에는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귀신 왕인 무독귀왕(無毒鬼王)과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이승에 돌아와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린 젊은 스님 모습의 도명존자(道明尊者)가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그림의 양옆에는 저승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고, 지장보살의 머리 근처에는 판관과 나찰, 천동, 천녀가 구름을 배경으로 배치되었다.

이 불화는 양질의 안료를 사용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적색 위주의 채색에 녹색과 청색을 조금씩 사용하여 대비를 주었으며, 시왕들이 머리에 쓴 관(冠)이나 손에 든 물건 같은 장신구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하였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시주자 등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거제 장흥사 지장보살시왕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5486 → 그림 아래의 화기에는 제작 시기와 봉안처가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시주자 명단 가운데는 상궁의 이름도 있어 당시 시주자 계층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또 화기(畵記)의 묵서 기록을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염불계(念佛契)인 19세기 봉암사 만일회(萬日會)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당시 사회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거제장흥사지장보살시왕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804540000 → 주색을 위주로 하여 녹색과 청색을 사용하였는데 자칫 화면이 어두워 보일 수도 있으나 금분으로 칠해진 홀, 금관, 장신구들이 화면에 고르게 분포되어 화면 전체가 화사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낸다. 아울러 제작 시기나 봉안처가 분명하며, 시주자중에는 尙宮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시주자 계층의 일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안료를 사용한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염불계인 만일회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써 당시 사회상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 거제 장흥사 주지 지용스님,초심을 잃지 않고 큰스님 유지를 받들겠습니다, 내외통신, 2016.1.26. http://www.nw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60 →“지장보살시왕탱은 함경도에서 한 노스님이 걸망에 넣어 거제도로 모시고 왔다”며 “지장보살님이 장흥사 최초의 부처님이시다. 장흥사는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지장보살시왕탱은 많은 사람들이 탐을 냈다. 1970년대에 도난을 당했으나, 그들이 다시 소포로 보내어 지금까지 모시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