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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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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숙종 29년(1703)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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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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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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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0일 (일) 12:22 판


거제세진암목조여래삼존불좌상
거제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거제세진암목조여래삼존불좌상
한자 巨濟洗塵庵木造如來三尊佛坐像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3길 31-6, ,2 (동상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5호
지정일 2002년 10월 24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구(軀)
웹사이트 거제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세진암은 조계종 사찰의 거제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암자이다. 이 곳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높이 50㎝ 크기로 존용(尊容)과 법의(法衣) 표현에서 조선 후기 18세기의 양식적 특징을 지닌 단아한 모습의 불상이다. 불신(佛身)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기(服藏記)에 “강희사십이년계미오월일 화공안간 와룡산 심적암(深寂庵)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이 불상의 조성 시기는 조선 숙종29년(1703년)이며, 원래 와룡산 심적암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나 후대에 세진암으로 이봉(移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년에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이 불상들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수일(守日 또는 守一)에 의해 조선 숙종 29년(1703) 경상남도 사천 와룡산(臥龍山)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불상들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모자 형태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 세 불상은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은 본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 복장 유물이 언제 발견된 것인지 확인 못함 – 자료 검색 불가 ; 확인 필요함.

1차 수정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 복장 발원문에 의하면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전체적인 문장의 구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
    • 1.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 ․ 대세지 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보살상들은 승려~
    • 2. 불상 속에서 복장이 나왔고 그 기록에 의해 조성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었음을 밝힌다.
  1.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1. 연도가 먼저 나오고 만든이가 나오는 게 이해하는 데 순조로와보임
    • 2. 순접이 아니라 역접으로 ..
    •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있다. 숙종 29년(1703),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2차 수정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숙종 29년(1703)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거제세진암목조여래삼존불좌상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803250000 → 조계종 사찰의 거제 본산으로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향나무 조립식 삼존불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머리, 몸, 팔, 다리 등으로 구분 조각하여 조립식으로 되어 있고, 불신(佛身)내부의 복장품 중 발원문에는“康熙四十二年癸未五月日華功安干臥龍山深寂菴”이라고 쓰여 있어 이 불상이 1703년(숙종 29년)에 와룡산 심적암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세진암의 중건시기는 약 100여년전이라고 하며, 일본의 자료에 의하면“대한제국때 거제면에 고찰이 있었다”고 적고 있어 세진암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 온화한 미소 세진암 목조여래 삼존불좌상, 거제방송, 2014.6.12. https://www.geoj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34 → 대웅전에 목조여래 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석가모니상이 아닌 아미타불인데도 대웅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조각은 수일(守一/日) 스님이 주도하여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스님은 불상 조성에 이름이 높은 분입니다. 양쪽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향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높이가 50cm쯤 되며, 머리 몸 손 다리를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췄다고 합니다. 불신 내부를 파낸 빈 공간에 예쁜 보자기에 싸인 칠보(七寶)와 팔경(八經)의 다라니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자기의 매듭이 너무 복잡해 푸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 이 협시불은 2009년 6월에 도난을 당했다가 다시 찾은 적이 있습니다. 도난 전과 비교하면 대세지보살의 팔목에 꽂힌 오른손이 시계 반대 방향으루 90도 가량 돌아가 있습니다.
  • 최선일, 「17세기 후반 彫刻僧 勝浩의 활동과 불상 연구」, 『선문화연구』 제8집, 2010. → 조각승 守一(守日 -1675-1730-)은 승호와 같이 불상을 조성한 후,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수화승으로 불상을 제작하였다. 그는 1675년 수화승으로 달성 소재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석조시왕상을 만들고, 1685년에 경북 청송 대전사 보광전 석조삼존불좌상 조성 때 32명 가운데 15번째 언급되었으나, 10년 후인 1695년에 수화승으로 전남 장흥 보림사 고법당 삼존불상을 개금하고, 1702년에 전남 순천 대흥사 석조오십삼불과 과거칠불 조성을 주도하였다(그림 18). 당시 畵員이라는 명칭 앞에 碩德으로 언급되어 높은 지위에 있었던 승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03년에 경남 사천 와룡산 심적암 목조삼존불좌상(거제 세진암 봉안)을 주도하고(그림 19), 1707년에 장흥 보림사 新法堂 7구의 불상을 개금하였다. 당시 승호는 3점의 불화 改造에 두심과 같이 참여하였다. 또한 1708년에 조각승 법종이 지리산 甘露寺 修道聖殿庵 목조보살좌상을 조성할 때, 전북 김제 금산사 장육불상을 중수하였다. 따라서 수일은 김제 금산사에 거주하면서 1690년대 전국에 걸쳐 활동한 스님이다.
  • 거제도 여름휴가는 거제의 유일한 전통사찰 세진암&조선시대 사립학교였던 '반곡서원'에서, 거제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20.7.27. https://blog.naver.com/geojecity/222042788629 → 유리 안 봉안 사진 확인
  • 거제 세진암 불상 도난, 불교신문, 2009.6.10.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6634
  • 세진암 삼존불상 훔친 2명 대전서 검거, 새거제신문, 2009.6.13. http://www.saegeoj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