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안국사 은광대화상 승탑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부도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과 달리 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하는 구조물이다. 이 부도의 몸체에는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은광대화상의 부도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은광대화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에 대한 내력을 알 수가 없다. 한편 이 부도가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어머니의 부도라는 이야기도 간혹 전해지고 있으나,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나 증거 역시 없다.

이 부도는 사각형의 바탕돌(地臺石) 위에 받침돌(臺石)을 놓고, 몸체(塔身)와 지붕돌(屋蓋石)을 얹은 구조로 되어 있다. 중간의 받침돌을 받치는 괴임돌과 위 받침돌에는 각각 땅과 하늘을 향해 핀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위 받침돌과 몸체를 이어주는 괴임들은 없으며, 지붕돌에는 기와골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 부도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서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이 승탑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둥근 받침돌을 놓고, 팔각형의 몸돌과 지붕돌을 얹은 구조로 되어있다. 몸돌에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승탑의 주인을 알 수 있으나, 은광대화상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 무늬와 기와골이 표현된 지붕돌의 양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승탑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 ‘~사리를 모셔놓은 조형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같은 의미에서 승탑이라고도 한다.’
    •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 글로 지어 새겼다.’
    • 양식으로 보아 시기를 추정했는데 근거 양식은 무엇인지 보완 필요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승탑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의 유골과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다르게는 부도라 부른다.
    • 이 승탑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둥근 받침돌을 놓고, 팔각형의 몸돌과 지붕돌을 얹은 구조로 되어있다. 몸돌에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승탑의 주인을 알 수 있으나, 은광대화상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 무늬와 기와골이 표현된 지붕돌의 양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전체적으로 팔각을 기본형태로 하고 있다. 기단의 둥근 받침돌에는 내림 연꽃이 장식되어 있고 몸돌을 받치는 받침돌에는 올림 연꽃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의 받침돌에는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 새겨 승탑의 주인을 밝혀 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장식이 없고, 두꺼운 지붕돌은 윗면에 기와골이 표현되어 있으며, 꼭대기 상륜부는 훼손되어 모양을 알 수 없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팔각원당형으로 기단에 새긴 연꽃문으로 보아 고려 초를 전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부도와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승탑’의 정의를 굳이 문화재 안내판에 명기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안내판 아래쪽에 주석과 같이 부연설명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함.
    • 문화재 명칭에 대한 의문 → 함양 안국사 내에는 이 승탑 이외에도 ‘함양 안국암 승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이 있음. 동일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안국사’로, 하나는 ‘안국암’으로 다르게 지칭하여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
    • 이 승탑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둥근 받침돌을 놓고, 팔각형의 몸돌과 지붕돌을 얹은 구조로 되어있다. 몸돌에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승탑의 주인을 알 수 있으나, 은광대화상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 이 승탑이 서산대사 어머니 부도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부기할 필요가 있음. (기존 문안에는 명시되어 있음)
    • 받침돌에 새겨진 연꽃 무늬와 기와골이 표현된 지붕돌의 양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승탑에 대한 기본 정보가 부족함(크기와 결실부재-상륜부 등을 명기할 필요 있음) 현상 설명이 지나치게 소략함. 기단은 상, 중, 하대석으로 나뉘고, 상, 하대석에 연꽃무늬가 있으며 하대석이 원형이라는 점이 특이함. 또한 옥개석은 상부에 기와골과 같은 문양을 넣고 하부에 처마를 표현하고 있는 점은 통일신라 승탑에서 보이는 양식 요소를 계승한 것으로 생각됨. 그러나 이러한 요소만으로 이 승탑을 통일신라 작품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며, 하대석이 원형이라는 점으로 보아 오히려 고려시대 작품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됨.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여 정확한 시대 편년의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음.
    • 동일 사찰 내에 비슷한 형태의 승탑(함양 안국암 승탑)이 전한다는 것을 부기하여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음.

2차 수정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이 승탑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둥근 받침돌을 놓고, 팔각형의 몸돌과 지붕돌을 얹은 팔각원당형의 구조로 되어있다. 기단에 연꽃무늬를 새긴 것으로 보아 고려 초를 전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몸돌에 ‘은광대화상의 탑(隱光大和尙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승탑의 주인을 알 수 있으나, 은광대화상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장식이 없고, 두꺼운 지붕돌은 윗면에 기와골이 표현되어 있으며, 꼭대기 상륜부는 훼손되어 원래의 모양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