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영은사 대웅전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영은사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성안의 오래된 사찰로 공산성과 역사를 함께해 왔다. 영은사 경내에 있는 전각은 금당에 해당하는 건축물로, 원통전[圓通殿, 관세음보살의 다른 존칭]으로 불린다.
대웅전은 북향으로 세워져 금강을 향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면적이 19.5㎡ 되는 소규모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유형문화재 제160호], 아미타후불탱[문화재자료 제376호], 칠성탱화[문화재자료 제377호],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영은사의 중심 건물이다. 금당에 해당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대웅전’으로 명명되었지만,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원통전(圓通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전각의 이름은 ‘모든 곳에 빠짐없이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나타낸다.
영은사 원통전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금강(錦江)을 향해 북향으로 지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1933년에 보수된 것이라고 한다. 건물 좌우에 출입을 위한 작은 문이 달려있으며, 지붕의 양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을 달았다.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이 중앙에 모셔져 있으며, 아미타후불탱[문화재자료 제376호], 칠성탱화[문화재자료 제377호],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의 불화가 걸려있다.
영은사는 조선 세조 4년(1458)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전하며, 임진왜란 때 승병장(僧兵將)으로 활약했던 영규대사(靈圭大師, ?-1592)가 승병들을 양성한 곳이기도 하다.
- 영은사는 처음에는 묘은사로 불렸다가 인조 때 은적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고 한다. 인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 출토되었으며, 이에 이 자리에 백제 때부터 사찰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1차 수정
대웅전은 영은사의 중심 법당이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원통전(圓通殿)’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법당 안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원통전이라는 이름은 ‘모든 곳에 빠짐없이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나타낸다. 영은사 대웅전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건물은 1933년에 보수된 것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 놓인 불단 중앙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이 모셔져 있고, 아미타후불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칠성탱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7호),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의 불화가 걸려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새로 기술 : 공산성내에 자리한 영은사는 공주시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공산지(公山誌)』에는 세조 4년(1458) 그의 명으로 건립된 사찰이며 처음 이름은 묘은사(妙隱寺)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靈圭大師)가 승병을 훈련시키는 훈련소였으며, 광해군 8년(1616)에는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하기도 하였다. 또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났을 때 인조가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해 오기도 하였다 한다.
이 절의 중심 법당은 대웅전인데 지금은 ‘원통전(圓通殿)’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건물로, 지금의 모습은 1933년에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원통전은 다른 이름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봉안하는데 관음보살은 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있는 것이 통례이다. 지금의 전각에도 목조관음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이 중앙에 모셔져 있고, 그 외 아미타후불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칠성탱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7호),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의 주요문화재가 있다.
- 새로 기술 : 공산성내에 자리한 영은사는 공주시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공산지(公山誌)』에는 세조 4년(1458) 그의 명으로 건립된 사찰이며 처음 이름은 묘은사(妙隱寺)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靈圭大師)가 승병을 훈련시키는 훈련소였으며, 광해군 8년(1616)에는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하기도 하였다. 또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이 났을 때 인조가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해 오기도 하였다 한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산성 내 승군 주둔 사찰로서 영은사의 역사적 의미 기술 필요. (문화재청 문화유산 해설 참조, 기존 문안과 상이함)
- 건립연대를 조선후기로 언급 필요.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공포의 양식 등을 통해 조선후기에 건립된 건축물로 보이며
- 건축물의 특징 간략히 언급 필요. :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면서도 측면과 귀공포의 대각선방향 살미를 구성한 점을 특징으로 언급할 필요 있음.
- 충남도에 문화재 명칭 변경 권고 필요 :‘대웅전’ -> ‘원통전’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없음.
2차 수정
대웅전은 영은사의 중심 법당이다. 정면에 걸린 현판에는 ‘원통전(圓通殿)’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법당 안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원통전이라는 이름은 ‘모든 곳에 빠짐없이 널리 두루 통한다’는 의미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음을 나타낸다. 영은사 대웅전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건물은 1933년에 보수된 것이라고 한다.
법당 안에 놓인 불단 중앙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이 모셔져 있고, 아미타후불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칠성탱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7호), 신중탱화, 독성탱화, 산신탱화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